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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아들 도키오' 후기 | 감동 소설 추천 | 우울할 때 읽는 소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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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아들 도키오'를 읽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봅니다.
 
그의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해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책 속에 흠뻑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의 복잡한 문제는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혀져요.
 
올해 초에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 강하게 당겼습니다. 그런데 또 살벌한 추리 소설 느낌은 아니었어요. 분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것이 있을 거야! 하며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소설이 '아들 도키오'였습니다. 띠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가장 따뜻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나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고 있었던 터라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로 구매해 읽었습니다. 


'아들 도키오'는 다쿠미라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지독한 유전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다쿠미에게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도 병이 발현되어 사별할 상황에 놓이게 돼요. 
 
이때, 다쿠미가 아내에게 고백합니다. 사실 예전에 미래에서 온 아들을 만났었다고.
 
이것이 프롤로그의 내용이고, 이후 소설 전반에 걸쳐 다쿠미가 젊은 시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떻게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쿠미가 한창 방황하던 때, 그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건 지즈루였어요.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고, 예민하고 난폭해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 옆에 있어준 여자친구죠. 
 
지즈루는 남자친구의 재기를 위해 애씁니다. 돈도 빌려주고 일자리가 있으면 가서 면접이라도 보고 오라고 등떠밀기도 해요. 하지만 다쿠미는 그것마저도 받아먹지 못하고 또 일을 그르칩니다.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른 지즈루는 마침내 다쿠미를 두고 떠나죠. 
 
다쿠미는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지즈루를 찾아나섭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만나 지즈루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요. 
 

지즈루 : "다쿠미가 무모한 짓을 벌이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어떤 사람이라도 나이를 먹으면 진중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비굴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어. 허세든 억지든 상관없으니 당당했으면 했어."

다쿠미 : "환멸하게 되었다는 건가." 

지즈루 : "그런 거랑은 좀 달라. 그때 다쿠미에게서 내 모습도 본 거야. 운이 없어서, 뭘 해도 제대로 안 돼서, 그러다 보니 완전히 비굴해져버린 내 자신을 깨달았어.

그리고 다쿠미를 그렇게 만든 것도 분명 나일 거야. 우리 둘은 더는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각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고." (422쪽)

 

"우리 둘은 더는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소설에 나온 수많은 대사 중에 저는 특히 이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서로간의 합'입니다. 각자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서로 잘 맞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가기 힘들어요. 
 
관계 유지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둘의 잘못은 아닙니다. 단지 둘이 만난 시점, 서로의 상황, 각자의 성향이 잘 맞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관계를 이어나가면 힘든 시간만 더 길어지는 겁니다. 지즈루의 결단이, 눈앞의 현실만 보면 오히려 더 힘든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놓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지즈루의 말처럼, 각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으므로 희망은 더욱 커졌을 겁니다.
 


 
가까이 있는 친구 혹은 연인과의 관계로 힘들 때,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잘 보듬어주고 갈등을 함께 헤쳐나가는 건 매우 박수 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냉정하고 단호한 결정이 필요하기도 해요. 
 
저 역시 과거에 꾸역꾸역 이어오던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 악 물고 끊어냈더니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정도의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지즈루도, 아들을 잃을 처지에 놓은 다쿠미도 긴 인생 속에서 결국은, 마침내, 행복해지길 바라봅니다.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라며 재미있는 이야기 찾아 헤매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드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동 소설 '아들 도키오' 리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도키오' 하이라이트]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죽음 직전까지도 꿈을 꿀 수 있다는 말이라고. 당신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미래였어.

인간은 어떤 때라도 미래를 느낄 수 있어. 아무리 짧은 인생이어도, 설령 한순간이라 해도 살아 있다는 실감만 있으면 미래는 있어. 잘 들어.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그런데 당신은 뭐야. 불평만 하고, 스스로 무엇 하나 쟁취하려 하지도 않아. 당신이 미래를 느끼지 못하는 건 누구의 탓도 아냐. 당신 탓이야. 당신이 바보라서." (396쪽)
 
"시간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돼 있는지 나는 잘 몰라. 사람들은 그렇게 미래에서 온 혼의 도움으로 역사를 쌓아올려왔을지도 몰라.

내가 도키오 덕에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물론 그런 건 전부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어. 예전에 도키오라는 이상한 남자가 있었고, 내 젊은 시대에 약간 영향을 끼쳤다. 그 남자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지금의 괴로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한다. 그런 걸지도 몰라. 무의식중에 말이지.

그런데 역시 나는 그때의 도키오는 우리 아들인 도키오라고 생각하고 싶어.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도키오를 이 세상에 맞이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니까."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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