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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을 읽고 | 느낀점 감상문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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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구입은 지난 겨울에 했다. 그때 '칼의 노래'도 같이 샀었는데, 그것 먼저 읽다가 포기해서 '하얼빈'도 자연스럽게 읽는 걸 미뤘다.
 
그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두 권을 내리 다 읽어 버린 어느 날, 책장에 꽂혀있는 '하얼빈'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안중근의 이야기라면 잘 읽을 수 있겠지' 생각하고 호기롭게 책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틈틈이, 읽어내려갔다. 
 


'하얼빈'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이거였다. 안중근은 그 시절, 정말 외로운 싸움을 했었구나. 
 
안중근이 거사를 준비하던 1909년. 김훈 작가의 글에 의해 다시 그려진 그 시대는 이미 일본 제국주의의 세상이었다. 동아시아 전체가 일본에 의해 통일이 되어 가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의 황실부터가 독립 의지가 없었으니. 순종과 황태자 이은은 그저 일본이 하자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 곳곳에 '이미 일본이 대세가 되어 버린 현실'이 묘사되어 있다.
 

 데쓰레이마루는 예정 시간에 대련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두 맞은편 언덕에서 축포가 올랐다. 불꽃이 항구 위로 흩어졌다. 데쓰레이마루가 접안하는 동안에 환영 나온 거류민 대표들이 보트를 타고 나가서 기선 주변을 돌면서 만세를 불렀다. 

관동도독부 고등관이 부두에서 이토를 맞았다. 이토가 배에서 내릴 때 군악대가 기미가요를 연주했고 환영객들이 합창했다. 황동빛 관악기가 햇빛에 번쩍였다.  110쪽

 
조선이 일본 덕에 개화되고 문명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선민의식적 시선도 너무 자연스럽다. 그땐 정말 나라가 다 넘어가서 끝난 분위기였구나. 안중근이 이토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더욱 외롭게 느껴졌다. 
 

- 조선인들은 중국을 섬겨왔으므로 열복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열복은 기뻐서 스스로 따른다는 뜻이다. 이제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조선인들의 열복이 필요하다. 열복은 일본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열복은 문명개화의 입구이고 동양 평화와 조선 독립의 기초이다. 

이토는 건배의 잔을 올리면서
-엣푸쿠, 엣푸쿠.(열복)
를 외쳤다. 조선 대신 몇 명이 엣푸쿠를 따라서 외쳤다. 

이토는 다시 잔을 올리면서
- 분메이카이카(문명개화)
를 외쳤다. 조선 대신들이 잔을 올리고 
- 카이카. 카이카.
를 외쳤다. 

84쪽

 
'하얼빈'의 또 한 가지 포인트는 안중근의 거사 이후에 진행되는 신문과 재판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예상했을 것이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장면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반드시 그 부분이 클라이맥스가 될 거라고. 그 부분이 가장 긴장감 있게, 박진감 넘치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라고.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를 쏘는 장면은 덤덤하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후에 나오는 안중근, 그리고 그와 동행했던 우덕순의 신문, 재판 장면에서 더욱 몰입이 됐다. 클라이맥스는 거기에 있었다.

 


“어디를 겨누었는가?”

“심장을 겨누었다.”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고 거사를 치른 다음 해인 1910년 3월 26일 사망한다. 원래 사형 집행일은 3월 25일이었는데, 그때가 한국 황제의 생일이라 날짜를 바꿔야 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 시절 안중근의 죽음은 그렇게 자연스레 묻혀 버렸다.

바로 전날, 순종의 서른일곱 번 째 생일이라 연회 등 행사가 있었다. 김훈 작가는 당시의 분위기를 '산수유와 매화가 잇달아 피어서 창덕궁의 봄은 화사했다'라고, 불과 몇 달 전 하얼빈에서 있었던 일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한다. 
 
3월 27일은 부활절.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가 있었다.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된 후 바로 다음 날이었다. 김훈 작가는 당시의 명동 대성당을 이렇게 묘사했다. '봄의 햇살이 비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영롱했다. 팔십여 명이 영성체했고 예비 신자들이 영세 받고 입교했다. 성가대가 부활 찬송을 노래했다. 뮈텔 주교와 신자들이 따라서 노래했다.'
 


 
안중근은 유족들에게 유해를 하얼빈에 묻어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당연히, 허락하지 않고 여순 감옥에 묻었다. 그 유해는 아직까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안중근의 정신을 후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기릴 수 있도록 유해가 발굴되고 한국으로 소환하는 등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에 가둬놓을 수 없다"고.
 

안중근이 이토를 자기 시대의 적으로 여기고 그를 쏴 죽였다고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 평화의 명분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현재가 더 고통스럽다.

초야의 글쟁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경험으로 생각해볼 때 지금이 더 절망적이다. 중국은 강대국이 됐고 북한은 핵으로 무장했고 중국과 북한은 군사 동맹을 만들고 있다. 동양 평화는 그때보다 지금 더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온 문장이다.

<채널예스 김훈 작가 인터뷰 중 - 2022. 8. 5.>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시의 시대상이나 안중근의 발자취, 안중근과 우덕순의 신문 및 재판 기록 등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꼭 읽어 보자. 김훈 작가가 철저히 자료 조사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소설인만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역사에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 하면 좀 멀게 느껴지지만 생각해 보면 1900년대 초반은 그리 먼 역사가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아버지 정도만 되어도 그들의 시간은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던 때에 가서 닿는다. 
 
하지만 당시의 역사를 우리는 교과서로만 딱딱하게 배웠을 뿐이다. '하얼빈'과 같은 소설을 통해서 좀 더 생생하게 느껴보는 것도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좋은 방법일 것이다.

나도 이번 기회로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와 같이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보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

왼쪽부터 안중근, 우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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