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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관한 기록/메모와 단상들

<그것이 알고 싶다> 고유정 편을 보고

by 꿈꾸는 강낭콩 2019. 8. 9.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공포영화도 아니고, TV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도 악하게 행동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7월 27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얘기다.
 
요즘 한창 바쁜 시기보다 시간 여유가 있다.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을 챙겨 보곤 한다.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곤 하는데, 어제는 문득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생각이 났다. 최근 제주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을 다뤄 이슈가 된 바 있어 관심이  생긴 것이다.
 
해당 방송내용은 방송이 되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사건 자체가 워낙 끔찍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던 데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 나레이션을 맡고 있는 김상중 배우가 녹화 후 "<그것이 알고 싶다>를 11년째 해왔지만 이번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다"라는 소회를 밝힌 것이 신문기사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방송 내용은 말로 전해 들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시각적 측면에서 딱히 끔찍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묘사된 건 없었다. 그 수법이 잔인하긴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이런 잔혹 범죄 사건을 접할 때마다 조금씩 나 자신도 무뎌져 간다는 것도 무섭긴 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방송을 보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걸까. 그것은 고유정이 보여준 치밀함과 뻔뻔함이었다. 
 
고유정은 경찰에 체포된 뒤, 의붓아들의 죽음은 재혼한 남편의 잠버릇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고 전 남편의 살인은 성폭행을 피하려다 저지른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리해서 보여준 내용을 보면 그와는 완전 정반대다.
 
친아들과 의붓아들, 둘 다 본인의 손에 키우지 않고 있었고 또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의붓아들을 데려오자고 사근사근 남편에게 얘기한 것. 그리고 이틀 만에 사망한 것. 사망한 아들이 죽은 현장에 있었던 이불 등의 물품을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 갖다 버린 것.
 
의붓아들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준비해준 음식이 카레였는데, 그것은 고유정이 전 남편을 만나 펜션에서 졸피뎀을 타서 먹인 것으로 보이는 카레와 정확히 같은 메뉴였다는 것. 전 남편의 친아들 면접 교섭일이 정해진 바로 그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검색어들을 입력해 포털사이트를 이용한 흔적들. 수많은 정황증거들은 고유정의 살인이 감정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이고 철저히 계획적인 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고유정이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도 두 달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고유정이 훼손한 걸로 알려진 전 남편의 시신은 전혀 발견된 게 없다고 한다. 시신 없는 살인 사건. (이번 건은 그렇지 않을 거라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범인에 대한 무죄선고도 가능하다는데, 부디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 사건의 원인을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찾고 있었다. 바로 모성 중심의 사고 방식이다. 결혼생활 당시 폭력성을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정이 전 남편과의 이혼소송에서 친권과 양육권을 얻어낼 수 있었전 이유를, 제작진은 고유정이 '엄마'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유아의 자식이 있는 경우 친권 양육권을 남자 쪽에 주는 걸 법원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사건발생 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을 한다. 고유정이 엄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의 진술을 믿었으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고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다는 게 초동 수사 미흡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법원과 경찰이, 남녀성별을 떠나 좀 더 객관적인 판단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맺는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애초에 고유정은 그런 부분을 인식하고 치밀한 계획을 짰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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