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있었을 때, 온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그러니까 하루 최대 8시간,
거기에 휴일근무를 포함한 연장근로 총 12시간까지만 법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물론 저는, 이 제도를 바로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규모의 회사에 일하고 있어서
당장 어떤 변화를 느낄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2년 뒤라 하더라도 주 52시간,
정해진 시간만 일하는 제 모습이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지지합니다.
업종 특성상 주 52시간만 일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곳이 꽤 있을 것으로 압니다.
광고업계와 같은 곳 말입니다.
그런 분야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런 업종,
기업들을 선별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근무 행태,
뿌리 깊은 관행들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기 때문에
제도 시행을 앞두고 부담스러워 했던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
대부분의 기업 생산성이 떨어질 것처럼,
그래서 기업이 위태로워질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던
일부 언론 보도들을 봤을 때 참,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당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책을 읽어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자본론은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칼 마르크스'가 쓴 책입니다.
'자본론'을 시사상식사전에서 검색 해보면
'자본주의 체제의 운동 법칙과 내적 모순을 분석한 책'이라고 설명 돼 있습니다.
사실 말만 들어봤지, 감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고전이었습니다.
뭔가 공산주의 관련한 내용들이 들어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던 겁니다.
하지만 얼마 전 '글쓰기 클리닉'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임승수 작가가
'자본론'을 쉽게 풀어 쓴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요.
그게 위 사진에 있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 가지 메시지 만큼은 분명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강렬했던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착취가 필수'라는 의미입니다.
'임금 노동자'는 현대판 '노예'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착취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임금노예로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해요.
참으로 교묘한 시스템이죠.
자본주의 빈부 격차의 비밀은 바로
'시간 도둑질'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중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에서의 '이익 창출'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좀 풀어서 이야기 해본다면 이렇습니다.
기업에 소속 돼 매일 9시간 일하며 임금을 받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가 받는 임금이라는 것은
4시간만 일해도 창출 해낼 수 있는 가치와 맞먹습니다.
5시간은 '잉여노동'인 것입니다. 5시간을 일해서 창출되는 가치,
즉 '잉여가치'는 임금으로서 노동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고용주의 이익이 됩니다.
이것이 '자본론'의 핵심인 '잉여가치론'이라고 합니다.
이를 증명해내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매우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2016년,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노동 시간이 2069시간이었다고 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인 1763시간 보다 300시간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가장 적은 연간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국가는 독일이었는데
1363시간이랍니다. 그밖에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가 그 뒤를 잇습니다.
당장 그들처럼 되자는 건 아닙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것이 기업에 닥친 엄청난 재앙인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당장 제도 적용이 어려운 기업들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어쨌든, 멕시코(2255시간)와 코스타리카(2212시간)를 제외한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우리보다 적게 일하고 다들 잘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기업들도 잘 운영되고 있지 않나요.
다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국가들인데 말입니다.
'자본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나왔던
여러 가지 '볼멘소리'들은, 결국 큰 틀에서는
자본가, 고용주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주는 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이러한 한계점이 있으니
정부가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라고 비판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이어져온 열악한 노동환경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이고,
주 52시간 일하는 것이 비정상이고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책들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아무리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제활동 인구의 상당수가 기업에 소속 돼 일하는
'임금근로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시행착오들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분명 우리 사회에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착취 할 때 하더라도, 이제는 좀, 정도껏 합시다. 인간적으로.
201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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