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올리는 정신과 상담 기록이네요.
그동안 티스토리 글쓰기 자체를 멀리 했었던 것도 있는데, 올해 초 상담을 재개하면서 일이 바쁘고 암튼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습니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슬슬 마음의 여유가 생겨 상담 일지도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글이 우울, 불안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께 아주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몇 자 써봅니다.
1. 전반적 근황 | 항우울제 복용 중단
한 6, 7개월 정도 병원에 다니지 않고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내원하기 시작한 건 올해 초, 3월 쯤으로 기억합니다.
회사 일 때문에 심리적으로 크게 한번 무너진 적이 있어서 또다시 제발로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5개월 정도 상담 및 약물치료를 다시 받았습니다. 상담은 2주 간격이었고 약물은 항우울제를 먹었습니다.
그러다 마음 상태가 좀 나아져서 항우울제 복용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약을 안 먹은 지는 한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게 치료의 효과인지 아니면 그냥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나아져서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정신과 상담을 다니면서 느끼는 건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줄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ㅎㅎ
2.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나의 감정’
항우울제 복용은 중단했지만 내원해서 상담치료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치료’라기 보다는 어디 대나무숲에 다녀온다~ 라는 느낌으로 부담 없이 다니고 있어요.
선생님만큼 내 이야기를 아무 편견 없이,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ㅎㅎ 꼭 좋은 선생님 만나시길 바라요.
어쨌든, 이번 대화 주제는 어쩌다 보니 ‘화’라는 감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셨냐, 라는 질문에 제가 이렇게 답했었거든요.
“대체로 편하게 잘 지냈어요. 혼자 시간을 보낸 날도 좀 있어서 잘 쉬기도 했는데. 요새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부쩍 짜증, 화 내는 일이 많아졌다?”
“아 그래요?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
“얼마 전에 출근 시간이 좀 늦어져서 지각 안 하려고 택시를 탔는데요. 택시 기사 분이 이상한 길로 가는 바람에 결국 제시간에 못 갔거든요.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뒷좌석에서 막 한숨 푹푹 쉬고, 마치 들으라는 듯이 그런 티를 엄청 냈어요. 내릴 때 차 문도 쾅 닫고. 그때는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나서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렇게 까지 티를 낼 일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음…사실 제가 듣기에는 그 정도면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런 생각 때문에 불편하셨어요?”
“네.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본 모르는 사람한테 그랬다는 게 좀.. 왜 그랬나 싶었어요.”
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선생님 표정에서 조금은 의아하다는 반응이 읽혔습니다. 그렇게 곱씹을 만큼 잘못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제가 그런 면에서 좀 스스로 엄격하게 가둔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 또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아..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었구나. 특히 누군가에게 짜증내고 화내는 걸 싫어하는구나.’ 라고요.
‘화’라는 감정을 무조건 드러내면 안 되는 것,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제 얘길 듣던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해줬어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선 화를 낸다.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뭐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힌 건 아니지 않냐? 그럼 감정을 가진 것이나, 그로 인한 행동을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말씀이신지 당연히 잘 알겠는데, 저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행동하는 것이 미덕이다, 라는 마인드가 아주 깊숙이 탑재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과도하게 저 자신을 통제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걸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불편해하는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예상 외로 상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어떤 결론을 내거나 할 순 없었는데, 어쨌든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상담이 2, 3주 간격이라 자주 올리진 못하지만 다녀오면 기록 남겨 공유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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