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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상담 일지

신경정신과 상담 2회 차 후기 | 대화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우울감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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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 번째 상담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걱정과 불안,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으로 두근거렸던 첫 번째 방문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03.08 - [사소한 일상과 생각들] - 신경정신과 첫 방문기 - 우울감, 무기력증 극복하는 방법 | 상담 1회 차

 

신경정신과 첫 방문기 - 우울감, 무기력증 극복하는 방법 | 상담 1회 차

회사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 중 한 곳을 방문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서둘렀어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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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과 방문은 상담시간 기본 30분에 왔다갔다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4, 50분이 소요되는 일이라 이번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했습니다.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쁜 편은 아니어서 여유가 있긴 했는데, 그래도 마음 편히 다녀오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상담 시간은 12시였습니다. 지난 주 예약을 할 당시에는 상담을 하고 밥을 먹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배가 고파서 밥을 먼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 구내식당 여는 시간이 11시 30분이라 얼른 가서 먹고 나오면 될 거라 생각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서둘러 먹었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더군요. 결국 상담 시간에 딱 맞추지 못했고 2, 3분 정도 늦게 병원에 도착, 상담을 시작했어요.

 

다음부터는 점심시간 상담 예약은 밥 시간을 고려해서 좀 더 여유있게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둘러 갔더니 숨이 헐떡거려서 진정될 때까지 대화를 잘 못하겠더라고요ㅎㅎ

 

어쨌든, 일주일 만의 상담이라 의사선생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주와 비슷하게 지냈고, 우울감과 무기력증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답을 했어요.

 

의사선생님은 아무리 약을 먹는다고 해도 일주일만에 바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원래 그런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다고 다독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어보셨어요.


"지난 주와 비슷했다면 어떤 점이 그랬어요?"

 

"그냥...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 그런 게 지속이 됐고, 기분이 다운돼 있는 상황에서 거기서 감정이 딱히 올라 오지도, 내려 오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렇게 쭉..."

 

"그러셨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게 제일 힘들어요?"

 

"음... 집에서도 계속 축 처진 상태로 있으니까 가족들한테 미안하죠. 아무래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잖아요, 집안 분위기에. 아이들한테도 안 좋을 것 같고, 아내도 덩달아 우울해하는 것 같고..."


상담은 이렇게 일주일 동안의 근황과 그 속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집에선 어땠는지, 회사에서는 어땠는지, 내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기서 힘들었던 건 무엇인지, 그때의 감정은 어땠는지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어요.

 

그렇게 한참 대화를 하다 의사선생님이 한번 화제 전환을 합니다. 

 

"이건 갑자기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나는 요즘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부모님'이란 단어를 들으니까 뭔가 기분이 아득해지는 듯 했습니다.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것 같기도 했고요. '힘들다, 힘들다' 이런 얘기만 하다가 마음이 급 평온해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였어요.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어머니는 성격이 어떤지, 어떤 단어와 문장을 통해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에게 나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거의 없었더라고요.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규정해서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보통 그렇지 않나요?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기에 그저 당연한 존재로 여겨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몇몇 간단한 단어들로 어머니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설명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이야기하게 되더군요. 

 

의사선생님이 따로 그렇게 물으셨던 건 아니었는데도, 저는 부모님께서 워낙 바쁘셨고,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선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는 것까지도 언급을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듣고 계시던 의사선생님이 한번 정리를 해주셨어요. (아마도 상담 시간이 다 끝나갔던 거였겠죠ㅎㅎ)

 

"얘기를 들어보니까 어린 시절 자라왔던 환경이 지금 영향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께서 늘 바쁘셨고, 어머니께서 그런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신다고 하셨는데, 본인이 직업, 직장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점도 들어보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거든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아주 잠시,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 뜨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을까요.

 

그동안 저는 '괜찮다, 괜찮다' 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이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모님이 바쁘셔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도 괜찮다,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서울에 와서 사는 것도 괜찮다, 힘들어도 괜찮다 하면서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키워왔던 것 같아요. '나는 나의 가족에게 충실하며 살아야지. 그들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지.'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가족들을 위해서 뭔가 하나라도 더 하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육아휴직도 두 번이나 했고, 그 와중에 가족에 대한 글도 꾸준히 쓰면서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제 마음 속에 강박관념이 생겼던 건지, 조금이라도 내가 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금세 좌절감, 우울감에 빠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했던 내 직업이 싫어지고, 다 때려 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성장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키워왔나 봅니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고 말이죠. 

 

 

상담을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서면서 또 한번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와 보길 잘한 것 같다고요.

 

저와 제 주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명확한 단어와 문장을 선택해 말로 표현해보는 것이, 그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눠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게 됐어요.

 

그렇게 실체가 없는 줄 알았던 내 감정에 대해, 막연했던 우울함과 불안감에 대해 조금씩 다가설 수 있고 또 만져볼 수 있고, 결국은 다독이고 주무를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상담을 거듭할수록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살짝 가져보게 되네요. 


상담 2회차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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