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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상담 일지

신경정신과 상담 3회 차 후기 |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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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 3회 차 상담치료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매주 월요일이 상담 받는 날로 정해졌네요.

 

한번 다녀오면 아주 크진 않지만 후련한 느낌이 들고, 또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사람에게 아무 눈치보지 않고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제 상담 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이번에는 점심시간에 가지 않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점심 때 약속이 생겨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오후에 다녀오는 게 속 편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점심 약속이 급 취소가 됐다는 허무한 이야기 ㅋㅋ)

 

어쨌든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궁금해하며 상담실로 들어갔습니다. 2회 차 때와 마찬가지로 한주 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며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개우울...

지난 일주일 동안 저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고 많은 걱정을 하게 했던 것은 회사 문제였습니다.

 

오랜만에 간 회사의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고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그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즉 무기력감이 극에 달해 있었던 건데요. (사실 회사 문제도 문제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제 마음의 문제도 있었던 거겠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주어진 일을 하나씩 해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애를 썼습니다. 파트너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일단 자욱한 안개 속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어요.

 

함께 업무를 진행하게 될 동료들도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루는 즉흥적으로 대학교 친구를 만나기도 했는데,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게 거의 1년 반 만의 일이었어요.

 

이렇게 하니까 우울한 감정이 잠시나마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리고 난 뒤에 다시 찾아오는 무기력감은, 아직은 어쩔 수 없더군요.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물으셨어요. "그럼 가정에서는 좀 어떠셨어요?"

 

대인관계나 직장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집에서는 어땠는지 듣고 싶으셨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딱히 지난 번과 다르게 이야기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집에 있으면 여전히 잘 웃을 수가 없었고, 쉽게 짜증을 냈고,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지도 못했거든요.

 

'집에선 여전히 비슷한 것 같다'고 얘길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제가 좀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셨어요.

 

아이들에게 잘 못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의 감정은 어떤 것인지, 아이가 하나일 때와 둘일 때 어떤 점이 다르고 또 힘든지 등 제가 막연히 '힘들다', '우울하다'고 여겼던 것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끔 유도하시는 듯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었어요. 가족들에게 예전처럼 잘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걸핏하면 짜증내서 미안하고, 계속 이렇게 축 처져있어서 미안하고... (뭐 그렇게 미안한 게 많은지 ㅎㅎ)

 

지난 번 상담을 통해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는데, 3회 차 상담을 하면서 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우울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미안함'이라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나의 복직과 함께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울한데 이 우울한 감정들 때문에 가족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이 없는 우울감'으로 발전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상담을 마무리하며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있는데, 당시엔 좀 뻔한 조언인 것 같아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 말을 깊이 새겨야겠다 싶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제가 받아들인 대로 남겨 보면 대략 이런 말이었어요.

 

"어떤 부모도 완벽하지 않아요.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하고 계신 거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아이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허용해주듯이 본인의 행동과 감정에도 조금은 관대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 감정이란 것도 원래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거예요.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또 좋아졌다가 하는 거거든요. 하나도 이상할 것 없어요."

 

되게 뻔한 조언이죠?ㅎㅎ 저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이 이야기만큼 지금의 저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까지 저는 제가 '이 정도면 잘 하고 있지, 뭐' 하는 태도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항상 '더 잘 해야돼',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해' 하면서 채찍질만 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조금만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은 우울해 했던 게 아닌가 싶더군요. 제가 주도적 삶을 꿈꾸고 '퇴사, 퇴사' 노래를 불렀던 것도 사실 여기서 비롯된 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ㅎㅎ

 

앞으로는 지나친 걱정, 우려, 죄책감,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보려고 해요.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잣대도 좀 낮추고 관대해져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이만하면 꽤 잘하고 있어! 하는 자세. 그게 바로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경정신과 상담 후기는 다음주에도 계속 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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