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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상담 일지

신경정신과 상담 7회 차 후기 | 의사 앞에서 한숨을 쉬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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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그동안 미뤄뒀던 상담치료 후기를 올립니다.

 

벌써 7회 차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정신과 상담치료라는 건 저라는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세상의 얘기일 거라 여겼던 적이 있었어요.

 

간혹 세바시 같은 곳에서 우울증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나에게는 전혀 벌어지지 않을 일일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그 세계에 와 있네요. 제가 생각했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세계'라는 건 애초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중입니다. 

7회 차 상담치료는 6회 차 이후 2주 만에 받은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족간의 갈등을 겪은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황이어서 2주 전 병원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좀 나았습니다. 

 

지난 번에 워낙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그동안 '집에서 좀 어땠는지'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저는 딱히 힘든 점은 없다고 대답했고, 아내와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운했던 감정도 많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번 만나고 있으니 육아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는 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무난하게만 얘기하고 가면, 30분 남짓의 상담 시간이 좀 아깝겠죠?ㅎㅎ 그래서 집안 사정 외에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딱히 '우울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등 감정의 동요가 있기는 했어요. 그래서 내 앞에 있는게 누구든 기회만 된다면 감정을 마구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의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 마치 직장 동료에게 고충을 털어 놓듯 직장 상사의 험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힘든 건 없고, 직장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좀 심해요."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그 분' 때문에요?"

 

"네..."

 

"어떻게 힘들게 하세요?"

 

"조직에서 거의 제일 윗쪽에, 꼭대기에 있는 사람인데 실무에 너무 관여를 심하게 해요. 그런데 관여를 하더라도 지시를 확실히 내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해라!' 라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에요.

 

항상 모호하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 나면 '이걸 이렇게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어떡하라는 거지?' 하는 물음이 남아요. 

 

그래도 얘기를 한 게 있으니까 어쨌든 밑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일을 진행시키는데, 그러면 막상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했어?' 이런 식으로 나와요. 말을 바꾸는 거예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사실 직원들은 힘들긴 하지만 욕하면서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어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협력업체 사람들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 분들한테는 흘러가는 시간이 다 돈인데, 직원들한테 할 이야기를 굳이 협력업체까지 불러서 압박을 주고 지체시키고, 말 바꾸고, 일 진행을 계속 가로막아요. 중간에 끼여있는 저 같은 직원은 심적으로 너무 힘들죠."


의사 선생님은 중간중간 제 얘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와중에 재미있었던 건, 항상 제 얘기에 귀 기울여주시던 의사 선생님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는 거였어요.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라거나, '와...진짜 윗사람 중에 그런 유형 있으면 정말 힘들죠'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저의 심적 고통(?ㅋㅋ)에 공감을 표현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진짜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사람마냥 '정말 힘드셨겠다'는 표정과 말로 위로를 해주시니, 그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떠들다가 이야기를 겨우 마무리했더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내쉬어졌어요. 다 털어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걱정과 불안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후련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가적 감정. 아무리 그래도 후자 쪽이 더 크긴 하겠지요. 상담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설 때면 기분이 막 좋아진다고 느끼진 않지만 적어도 온 몸을 감싸던 긴장상태가 조금은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는 게 사실이니까요.

 

내일이면 8회 차 상담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될지.

 

아직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가 딱히 없는데, 이만하면 이제 상담 간격을 더 늘려도 될지, 항우울제 약물 치료를 조금씩 줄여봐도 괜찮은 건지, 정 할 이야기가 없으면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ㅎㅎ

 

오늘도 주절주절 쓴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8회 차 상담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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