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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

"인생이 괴로울 땐 인상을 쓰지 말고 글을 써야 한다." | 김민식PD의 세바시 강연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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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김민식PD님의 세바시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창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그중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말이 있었어요.

 

"인생이 괴로울 땐 인상을 쓰지 말고,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괴로울 땐 인상을 쓰지 말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을 쓰면 주름이 남고 글을 쓰면 글이 남습니다.

 

괴로운 인생을 즐거운 인생으로 바꾸는 글쓰기의 3단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오늘의 괴로움을 씁니다.

 

나를 괴롭힌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이름을 쓰고요. 나를 힘들게 한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씁니다. 글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어요.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좀 풀립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하소연한 것 같아요."

 

요즘 마음이 좀 힘듭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잘 풀리지가 않아요. 확 털어버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좀 진정이 될까 궁리를 하다가 위에 언급한 김민식PD님의 말이 생각났어요. 세바시 강연도 유튜브로 다시 돌려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풀이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김민식PD님이 얘기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글쓰기' 3단계 중 첫 번째 단계를 실천해보려고요.

 

순전히 제가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쓴 글이니 굳이 읽으시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읽으시면 괜히 스트레스 받으실지도 몰라요...ㅎㅎ 

 

그럼 가겠습니다! 


회사에서 나는 감정 통제를 잘 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밖에서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런데 그게 '화가 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무슨 성인 군자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 당연히 나도 화가 날 때가 있다. 다만 그걸 바로 드러내지 않을 뿐.

 

한번은 회사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화를 안 내고 살 수가 있냐고. 화가 나지 않냐고. 그런 순간에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는 거냐고.

 

그때 나의 대답은 이랬다. 속이 상하는 일이 있으면 나중에 글을 써서 풀어버린다고.

 

사실 솔직히 얘기하면 화가 다 풀어지지는 않는데, 뭔가 쏟아내고 싶은 날에 글이라도 쓰면 조금 나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래서 내가 아주 오래 전에 개설해 찔끔찔끔 운영해오던 네이버 블로그를 보면 악에 바쳐서 휘갈겨 쓴 글 몇 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요즘 내 속이 말이 아니어서다. 지금 나는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복귀할 날을 코앞에 두고 있다. 1주일도 남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시간들이긴 했지만, 어쨌든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으니 지난 1년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가 힘들고 초조한 것 아니냐고? 천만에. 단지 그 사실 하나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요즘 괴로운 건 내가 정말 미치도록 싫어하는 직장 상사 한 명 때문이다. 

1주일 전, 키즈펜션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당시는 복직이 다가오고 있음을 슬슬 실감할 때라 싱숭생숭하던 시기였는데, 그래서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남은 기간만큼은 복직 생각, 회사 생각, 일 생각, 블로그 인스타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노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는 정말 마음 편히 보냈다. 키즈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수영을 하며 행복하다 느꼈고, 이 에너지로 복직해도 끄떡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도 쏙 들어갔다. 

 

하지만 늘 그렇듯, 꼭 이럴 때 훼방꾼이 나타난다. 이튿날 아침, 느즈막히 눈을 떠 휴대폰을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위에 잠시 언급했던 내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직장 상사에게 문자가 와 있는 것이었다. 나에게 "편하게 10분 정도만 통화할 수 있냐"고 물었다. 

 

딱 그 한 줄이었다. 그것 외에 다른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 줄에 나는 몹시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짜증났다. 화가 났다. 왜, 왜. 도대체 왜. 복직은 아직 10일이 넘게 남았는데 왜 연락하는 건데. 왜 하필 가족들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러 여행 와 있는데 연락을 하는 건데. 

 

뭐, 그렇다. 그 사람이 내가 여행온 거 알면서 연락한 것도 아니고, 윗 사람으로서 복직 앞둔 직원에게 안부차 연락한 걸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와 회사에서 마주한 세월이 햇수로만 따지면 5년이다. 내가 그를 모르겠는가? 연락한 타이밍, 문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만 봐도 뭔 얘기를 할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쌩까려다가, 무시하고 있으려니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여행 이튿날 아침이었다. 2박 3일 여행이었는데. 그 순간부터 여행 분위기 완전 다 잡쳤다.

 

아내에게 괜한 하소연을 했다. 아내는 그냥 빨리 전화드려보고 끝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남은 시간 재미있게 보내자고. 

 

그래, 시발. 통화 하자. 내가 뭐 죄 지었냐. 

 

통화 가능하시냐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일 얘기를 꺼냈다. 복직하면 뭐 할 거냐. 그의 첫 마디였다.

 

황당해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또 한번 물었다. 뭐 할 거냐고.

 

기분이 슬슬 더 나빠졌다.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복직하고 생각해봐야죠. 

 

그랬더니 나에게 돌아온 대답. 복직 얼마 안 남지 않았어? 슬슬 준비해야지.

 

이 냥반 이거 진심이구나 싶었다. 진짜 짜증났지만 멋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하하, 애들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그랬더니 이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 결정타를 날린다. 허허허. 그건 니 사정이지 임마~ 시간 없어~ 오면 빨리 준비해서 프로젝트 바로 들어가야 돼~

 

그건 니 사정이지. 그건 니 사정이지. 그건 니 사정이지. 그건 니 사정이지........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전화기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너무 화가 났다. 농담 몇 퍼센트가 섞여있는 말이었는진 알 길이 없으나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뒤로 본인 하고 싶은 일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놨는데 내가 귀담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이 회사가 이런 곳이었지. 그래...1년 만에 변할 리가 없는 곳이었지. 내가 미쳤지. 잠시나마 이직 생각을 접었던 나를, 과거로 돌아가서 줘 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쳐버린 기분은 원상복귀 되지 않았고, 그렇게 복직 이후의 일들이 신경쓰이는 상태로 2박 3일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구직 사이트에 등록 되어 있던 이력서들을 업데이트 했다. 근처에 증명사진 잘 찍는 사진관을 알아보고 이력서에 첨부할 사진도 새로 찍으러 다녀왔다. 시발, 내가 올해는 꼭 이 회사에서 나간다, 라고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물론 당장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부랴부랴 이직을 위한 밑밥 작업을 했던 건 내 의지의 표현이었고 화의 표출이었다. 그러면서 함께 다졌던 것이 또 있었다. 복직해서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면 물어버리겠다는 각오였다. 

 

그동안 나는 회사에 질질 끌려다니며 살았다. 회사라는 게 그런 존재인 건 당연한 일이다.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직원들에게 일을 부여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때로는 그 과정이 강압적이고 부당할지라도 따라야 한다. 

 

안다, 아는데, 나는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주도성을 가져오고 싶었다. 언제까지 질질 끌려다니며 살 수는 없었다. 그동안은 내가 짬밥이 안 돼서 그랬다고 하지만, 더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야 내 성향을 좀 알겠다. 회사든 어디든, 내 주도성을 방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흥미를 잃고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을. 

 

사실 내가 미치도록 싫어한다는 그 사람은 그냥 또라이 같아서 싫은 것이지만, 어쨌든 내가 옮겨갈 직장은 부디 직원들에게 자연스럽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어느 정도의 주도성을 인정해주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어떻게 아직 휴직기간 중에 있는 직원한테 전화해서 일 얘기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수가 있나. 시대가 바뀐 걸 전혀 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진짜 참교육, 참교육, 참교육!!을 해줘야하는데.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해줘야 효율적일지 그게 요즘 내가 하는 가장 큰 고민이다.

 

진짜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것이다. 막상 그의 기세에 눌려 온몸으로 반항하진 못하더라도 손가락 하나라도, 발가락 하나라도 까딱은 해볼 것이다. 그래서 그 미친자가 조금이라도 움찔하도록 만들 것이다. 어후. 정말 성질 뻗친다. 올해는 꼭, 1g 만큼이라도 주도성을 내 것으로 가져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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