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어느 순간 멈췄을 땐 일단 서점으로 갑니다.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이 멋있는 책을 골라보고요. 목차를 보고 책을 대강 훑어 보면서, 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지 그 느낌을 봅니다.
그래도 책이 잘 골라지지 않으면 베스트셀러 진열대 앞에 섭니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베스트셀러다 하면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중에서 하나를 사서 읽으면 대개 술술 읽히긴 하더군요.
이번에 그렇게 해서 집어든 책 중 하나가 <김미경의 리부트>였습니다.
저자인 ‘김미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TV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강연 잘하는 강사’ 정도의 인식이 있었습니다. 비록 TV를 통해서였지만 무대 위에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크게 느껴졌고, 이 분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이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서점에 갔을 때 신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리부트’는 뭔지 모르겠지만 부제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요즘 같은 시국에 안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저는 특히 이 코로나라는 녀석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필 휴직을 했을 때, 가족들과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바쁜 이 시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다니. 부지런히 놀러 다녀도 모자랄 판에 집콕 하게 만들다니.
책에서 코로나와 관련해 정확히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억울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어떻게든 다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장 한 장 책을 넘겨보았습니다.
<김미경의 리부트>는 완결된 자기계발서 느낌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가는 저자의 모습을 스스로 기록해 놓은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들이었어요.
코로나 시대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저자가 이 시국에서 이루어낸 뚜렷한 성과 또한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위기의식, 문제의식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어요.
"혼돈이란 단순히 의미 없는 요동이 아니라 언제라도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질서를 '내포한' 상태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 - 일리야 프리고진 Ilya Prigogine (197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35쪽
혼돈의 에너지가 크다는 건 질서가 잡혔을 때 질서의 크기도 크리라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혼돈으로부터 서서히 잡혀가고 있는 질서를 어떻게 빨리 알아채서 질서 안으로 빠르게 들어갈 것인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37쪽
‘혼돈’이란 질서를 내포한 상태이고, 혼돈의 에너지가 클수록 이후 질서가 잡혔을 때 질서의 크기가 클 것이라는 말. 저는 이 대목을 봤을 때 좀 섬뜩하더라구요.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상황들을 원망하고 증오할 줄만 알았지, 이 혼돈의 상황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영부영하는 사이 질서가, 그것도 그 크기가 아주 큰 질서가 잡혔는데 그 와중에 내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뒤쳐지겠다는 위기감이 갑자기 엄습해왔습니다.
저자와 같이 직원을 두고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어두웠을 겁니다. 하지만 김미경 강사는 참담한 심정에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남들과 동시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시작도 하지 않고 미리 패배감을 갖는 걸까. 내가 무언가 결심하고 시작한 날을 첫날 Day1로 보면 안 될까? 남들의 첫날과 나의 첫날을 비교하는 건 출발에 지장만 줄 뿐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중략) 그래서 추격을 시작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그러나' 정신이다. '늦었다'는 추격 콤플렉스를 이겨내려면 '그러나' 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늦었지만 그러나 나는 출발한다.' '확신은 없지만 그러나 나는 발을 내딛는다.' '포화 상태지만 그러나 나는 진입한다.' '그러나'라는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어 두려움과 단절해야 한다. 리부트하려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추격자가 되어야 한다. 183쪽
각종 신문과 논문, 연구소 리포트 등을 두루 섭렵하며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다가올 미래에 잘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나섭니다. 디지털 소통 수단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개발자들의 언어인 ‘파이썬’까지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에서는 생산자의 레벨에서 디지털을 이해해야 내가 원하는 비즈니스로 제대로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소비자만큼만 알면 평생 소비밖에 못 한다. 나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수준의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설프게라도 이 세상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알기 위해 기초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208 ~ 209쪽
이 대목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걸 보면 저는 아직 코로나 이후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진 않나 봅니다. 제가 너무 순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월급쟁이로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은 많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주는 안락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안주하려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어떻게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인디펜던트 워커가 되어라.' 말 그대로, 어떤 변수가 오든지 내가 원하는 일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중략) 내부와 외부의 모든 요인들이 아무리 변해도 언제든지 내가 원한다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인디펜던트 워커다. 그것도 내가 가장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101쪽
전문가들은 앞으로 2~3년 안에 이런 역량을 갖춘 인디펜던트 워커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천천히 방향을 잡고 흘러가던 흐름이 코로나로 인해 급물살을 탔다는 것이다. 103쪽
제 티스토리 블로그 제목을 보면 ‘주도적 삶을 향한 월급쟁이 성장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던 건데요.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어쨌든 계속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또 다른 무언가를 계속 도모해 나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진 몰라도, 어쨌든 이 책에 의하면 제가 방향 설정 하나는 얼추 비슷하게 하기는 한 모양이군요.
인디펜던트 워커가 갖춰야 할 5가지 / 첫째, 코어 콘텐츠를 가져라. 둘째, 디지털 기술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셋째, 셀프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만들어라. 넷째, 네트워크를 관리하라. 다섯째, 돈 관리에 영리해져라. 109 ~ 115쪽
사실 최근에 다시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의욕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어요. 지치기도 지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김미경의 리부트> 리뷰 글을 쓰다 보니, 적당히 우울해 하고 이제 그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싶네요. 앞으로의 살 길은 ‘어떤 변수가 오든지 내가 원하는 일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 인디펜던트 워커들 앞에 펼쳐질 테니까요.
지금처럼 모든 것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혼돈의 시대에는 상수인 나를 가장 중심에 두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나'라는 상수를 지켜내기 위해 나와 관련된 주변의 모든 변수를 내가 주도적으로 수정하고 바꿔야 한다. 최선을 찾기 힘들다면 차선책이라도 찾아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잡아야 한다. 그래야 달라진 세상에서도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이 나를 다시 돌아보고 예전보다 더 나다운 꿈을 찾는 최적의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262~263쪽
나이 50을 넘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재료 탓을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재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행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행이다.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걸 행운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불행일 것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에게 온 모든 일은 행운도 불행도 아니었다. 무색무취, 중성, 말 그대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 단지 그때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행운이 되기도, 또 불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263쪽
분명한 것은 계획한 대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불행은 막힌 길, 틀어진 목표, 무너진 꿈 앞에서 다른 길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이다. 264쪽
코로나라는 막강한 변수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나’라는 상수를 지켜내기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막막하더라도 주도적으로 계속해서 주변의 변수들을 수정하고 바꿔가다보면 저자의 말처럼 길이 보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밖에 주목한 문장들]
1. 어떤 회사든 6개월은 버텨도 2년을 버텨낼 수는 없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기업도 개인도 파산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업종을 바꿔야 할 순간이 온다. 그러니 이제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정말로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였나? 이 위기를 내 힘으로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진심을 다해 결심했나?' 51쪽
2. 디지털 세상에 내 이름 석 자를 데뷔시키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디지털을 서서히 합체해나가면 된다. 트랜스포메이션이란 단어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변화가 아니라 '변신'이다. 디지털 구사 능력이 곧 꿈의 능력인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당신의 인생 무기가 되길 바란다. 94쪽
3. 이번 코로나는 나 역시 평생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불행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로 읽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의 이 상황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서 보내온 메시지일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이제는 우리가 쓴 만큼 돌려준다는 생각, 아이들이 쓸 미래 자원을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조금만 쓰고 더 많이 남겨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 사태 이후 추가된 우리 어른들의 의무다. 254쪽
4. 새로운 기술 앞에서 작아질 때, 주변의 누군가 디지털 기술로 치고 나갈 때 주눅 들지 말고 자꾸 나한테 말해주자. 내 실력을 인정해주는 말, 그리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자꾸 연습해보자.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260 ~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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