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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영화 <고지전> 리뷰 : 전쟁의 잔인함이란 이런 것이다 | 한국전쟁 70주년 | 반전영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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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교착 상태에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나 싶었지만 최근들어 다시 나빠졌죠.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행동 중단 지시로 다행히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관련 뉴스로 시끌시끌하고, 또 한국전쟁 기념일이 다가오자 여기 저기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요. 

 

저도 그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의 리뷰 글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영화 <고지전>을 보고 쓴 건데요. <고지전>은 2011년 개봉 당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 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전쟁 영화입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우리나라 영화 중 전쟁의 참상, 그 잔인함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영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싹 바뀌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전쟁에 의한 흡수 통일 같은 건 거들떠 보지 않게 됐어요.

 

반전 영화로서의 <고지전>. 적극 추천드리며 가져온 리뷰 글을 아래에 붙여드립니다.


주인과 노예 변증법

 

정치학개론 수업 중 '한반도 통일'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찬반 의견이 오간 뒤, 마무리하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주인과 노예 변증법이란 게 있습니다. 주인이 노예와 같이 살다보면 주인도 점차 노예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즉 정상과 비정상이 만나면 둘 다 비정상이 된다는 겁니다.

 

한반도 상황도 그렇습니다. 북한이라는 비정상적인 국가와 함께 사는 대한민국도 정상이 아닙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서해교전 등 북한으로 인한 사건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내부의 문제들까지. 부작용 문제로 통일을 꺼리고 반대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평화로울 수 없을 겁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반도는 현재 '분단 국가의 저주'에 걸려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 저주를 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헐뜯으며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리라. 

 

영화 <고지전>에서도 '저주'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한반도에 저주를 거는 주체는 '전쟁'이다. 저주에 걸린 등장인물들은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모습을 잃어간다.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에서도 분단현실 속에서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형제애', '전우애' 등 인간적인 면도 함께 부각된다.

 

반면 <고지전>은 철저히, 인간이 전쟁을 겪으며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에 집중한다. <고지전>의 '전쟁'은 정말 잔인하다.

 

"우리는 빨갱이와 싸우는 게 아니다. 전쟁과 싸우는 거다."

  

전쟁 초기, 포항 전투에서 신일영(이제훈)은 다수의 아군을 죽여 다수의 아군을 살렸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신일영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나무라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죽을 목숨이었으니까. 누구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최전방 애록고지 '악어중대'. 그렇게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살아남기'란 걸 배운다.

 

단지 인민군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부터 살아남는 것. '전쟁'은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이라는 괴물이 만들어내는 모든 상황들과의 싸움이었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 거기서 이기는 방법은 '어떻게든 내가 사는 것'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의 죽음 정도는 점점 당연한 것이 되어가는 저주에 걸려 버린 거다.

 

이런 비참하고도 잔인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그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에 걸렸고, 누구는 모르핀을 투여해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누구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광기 어린  '전쟁형 인간'으로 완벽히 진화했다. 

강은표(신하균) : 우리가 지는 이유는,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지? .......  싸우는 이유가 뭐지?

현정윤(류승룡) :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 돼서 잊어버렸어...

비밀의 공간에서 편지로나마 따뜻한 정을 나눠오던 남북한 병사들도 전쟁에서는 내 죽음을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전장에서 마주쳤을 때, 얼굴을 알고 있었음에도 서로를 죽임에 망설임이 없다. 

 

이런 상황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그들은 왜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데 있다. 이유도 모른 채 교착 된 전선에서 2년 반을 싸웠다. 이 끔찍한 저주를 걸고 있는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6.25 전쟁의 저주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6.25 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그것은 잊혀져선 안 될,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의 '저주'도 끝나지 않았을 거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이해할 수도 없고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모를 그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건 끝나지 않은 전쟁의 저주 때문인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치고, 싸우고, 남을 밟고 올라서는 등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실과 <고지전>의 '전쟁'은 꽤 많이 닮아 있다. '저주에 걸려 병들어가는 나라'.

 

이런 생각이 들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쟁이란 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빼앗아가는지 일인지 뼈져리게 깨닫게 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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