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 영화인 아이 캔 스피크를 봤습니다. 개봉 당시엔 보지 못했지만 워낙 반응이 좋았던 영화라 기회가 되면 언젠간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3년 전 영화를 지금 시점에서 갑자기 다시 떠올리고 보게 된 건, 최근 불거진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이 위안부 관련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바로 이용수 할머니였습니다.
해당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에서는 이용수 할머니를 소개할 때 항상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언급했어요. 이용수 할머니가 영화 속 주인공 '나옥분'(나문희)의 실제 모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제 강점기에 겪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죠. 하지만 뉴스를 보다가 저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기로 했어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시장에서 수선집을 하며 살아가는 나옥분(나문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유머 코드 가득한 재미있는 분위기로 흘러가는데요. 위안부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어요.
그저 구청에 들락날락 하며 각종 민원을 넣는 데 혈안이 된 할머니를 보며, '저 할머니는 왜 저러실까...?' 궁금증이 생기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다소 억척스럽게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들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 나옥분 할머니가 구청 직원인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려 했던 진짜 이유가 공개되고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까지 알려지게 되는데요.
평소 나옥분 할머니와 알고 지내던 인물들은 그 사실을 언론을 통해 확인하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속 할머니의 일상을 지켜보던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순간 감정이입이 되며 울컥하더군요.
왜 그랬던 걸까요
'위안부' 혹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역사고 일본으로부터 끝까지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일이란 걸 잘 알 수 있죠.
그런데 그런 뉴스를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위안부 피해'가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큰 뉴스'로, 즉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이야기로 인식하게 돼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그런 인식이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듯 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의 역사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역사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다, 하고 말입니다.
그동안의 역사 인식에 허를 찔려서였는지, 나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부터 미국 의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장면까지 영화에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곤 하지만 영화다 보니 물론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할머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구청 직원 박재민(이제훈)부터 가상의 인물이고요.
나옥분 할머니의 실제 모델인 이용수 할머니가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할 때는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하셨다고 해요.
영어였든 우리말이였든, 당시 이용수 할머니의 연설은 국제사회에 위안부 피해사실을 널리 알리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나 흘렀는데 말이죠.
이용수 할머니는 <아이 캔 스피크> 개봉 당시 SBS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연출자인 김현석 감독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어요.
<아이 캔 스피크>와 같은 영화가 1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는 10편으로 해도 다 안 끝난다. <아이 캔 스피크>와 같은 영화를 더 만들어서 위안부 진실을 널리 알릴 수 있게 해달라.
할머니 말씀처럼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은 국제 사회에 더 알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요.
우리로선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안타깝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더 씁쓸해지네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서로간에 쌓인 오해를 풀고 다시 손을 맞잡게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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