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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와 단상들

일개 유권자의 21대 총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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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는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정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고 있자니, 그 누구에게도 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가장 나를 질리게 만들었던 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무슨 복잡한 공식 같은 게 있던데,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취지가 거대 양당이 차지하고 있는 국회 의석을, 규모가 작은 정당에게 더 많이 나눠 주자는 데 있었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총선 전에 미래통합당,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위성정당'이란 걸 만들어 버렸다.

 

누가 먼저였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본인들이 최종적으로 도입한 제도를 이렇게 악용할 수가 있나.

 

결국 국회의원들은 어떻게든 한 자리 차지하는 게 중요한 사람들인가.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뒤따라오는 의문은, 다른 유권자분들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 의문은 바로 '저들의 심중에 과연 국민이 있기는 할까?' 였다.

 

처음 도입한 선거 제도인만큼 시행착오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이걸 이렇게 이용해버릴지는 몰랐다.

'늬들이 그러면 그렇지. 정치 따위 극혐이다!' 하고 한동안 선거 공보물도 방구석에 처박아 놓고 있었다. 

 

투표를 하러 가더라도 그 누구도 찍지 않으리. 장렬하게 내 표를 기권표로 만들고 나오리라.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3년 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농단 사태, 그리고 박근혜 탄핵 사건이 떠올랐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정치인들 욕할 자격도 없지 않겠는가.

 

입으로 중얼중얼 욕을 하면서, 사전투표 둘째 날 근처 주민센터로 가서 투표를 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21대 총선 최종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이 총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출처 : www.daum.net

총선 직전 '범진보 진영의 180석 확보'를 예측(혹은 희망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의 말이 현실이 된 거다. 아니, 여기에 정의당과 열린민주당을 합하면 180석을 넘어서니 그보다 더한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80석이면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얼핏보면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타 정당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거나, 국민 여론에 반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국민들은 다음 번 대선, 총선 때 다시 투표로 답할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스스로 경계하며, 더 나은 정치로 보답했으면 한다. 

 

미래통합당은.....정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 정당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합쳤다가, 또 분열했다가. 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 총선 결과를 잘 받들어 청와대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건실한 정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진심으로.

 

일개 유권자의 21대 총선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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