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에 관한 기록/메모와 단상들

배달의 민족이 욕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

by 꿈꾸는 강낭콩 2020. 4. 9.

국내 대표 배달 서비스 플랫폼인 '배달의 민족'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최근 서비스 시스템을 바꿨기 때문이다.

배민은 그동안 일명 '울트라콜'이라고 하는 정액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월 8만 8천 원을 내면 배달의 민족 앱 내 특정 지역 검색 결과에서 해당 점포를 상위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런데 배민은 지난 4월 1일부터 '정률제'를 확대 도입했다. 외식업체들에게 배달의 민족을 통해 발생한 월 매출액의 5.8%를 수수료로 내게 하는 방식인데, 이것이 자영업자들과 일반 대중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률제 시스템에서는 식당 매출이 증가하면 그것에 따라 배민의 이익 또한 따라서 증가한다.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주된 이유다.

그동안 '수수료 0%' 지켜온 배민의 정책이 없던 것이 돼 버렸으니, 지난 해 연말에 있었던 '딜리버리 히어로'와의 빅딜도 부정적 시선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배민이 매각되며 국내 배달 앱 시장은 딜리버리 히어로에 의한 독점 형태가 됐다.)

논란이 일자 배민은 사과했고, 4월 7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배민 측의 입장을 상세히 전한 바 있다. 

[인터뷰]배달의민족 "수수료 원상복구 불가, 응원도 많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박태희 상무(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들) 배달의 민족 얘기를 좀 해

news.naver.com

위 내용을 텍스트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나는 팟빵에서 다시 듣기로 해당 내용을 들었는데 그리 달갑지 않은 인터뷰였다.

우리 가족은 배민을 애용한다. 나는 대학생 때 자취하던 시절부터 사용했던 앱이다. 악감정은 전혀 없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좋아하는 서비스다.

배민을 운영하는 기업 '우아한형제들'의 유쾌한 에너지와 김봉진 창업주의 경영 철학도 좋아했다. 그가 쓴 책도 찾아 읽었을 정도다.

2019/01/17 - [리뷰도 일기처럼/독서 일기] -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의 독서법 <책 잘 읽는 방법>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의 독서법 <책 잘 읽는 방법>

저는 '독서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독서법 같은 게 꼭 필요한가? 책은 그냥 읽으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동진 독서법>을 읽은 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무작정,

dreaming-bean.tistory.com

그런데도 왜 배민의 입장을 듣는 것이 불편했을까. 일개 소비자일 뿐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남겨본다. 

먼저, 인터뷰에 응한 우아한형제들 박태희 상무에게서 풍기는 뉘앙스부터가 썩 좋지 않았다. 김현정 앵커가 이번에 도입된 배민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자영업자들과 대중들의 의견을 전하자 연신 '그렇지 않다'며 억울하다는 식의 답변을 이어갔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겐 그럴만한 '입장'이란 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만 놓고 보면 뭐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 수긍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의 입장을 전하는 앵커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탈한 웃음을 짓거나 때론 다소 격앙된 어조로 재반박을 하는데, 그 순간 '아, 배민은 별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거구나' 싶었다. 

이번 일처럼 기업 VS 대중의 구도로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에 '기업이 얼마나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분노한 여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배민이 '정률제'를 도입한 의도를 들어 보면 일리가 있다. '울트라콜'이라는 방식의 폐해가 그리도 심각했나 싶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이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기업의 입장도 뭔지 알겠다. 

하지만 나는 배민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기 이전에 그들의 서비스가, 우아한형제들이라는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고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돌아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은 플랫폼이다. 말이 좋아 플랫폼이지 어떻게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들여다 보면, 사실은 '착취 구조'로 돼 있다.

(배민이 실제로 자영업자들을 '착취'할 마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배달 앱 사업 구조라는 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해하지 마시길.)

스마트폰의 탄생과 함께 배민과 같은 배달앱의 탄생 또한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배민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했을 '일'이다. 배민은 창업 타이밍이 누구보다 빨랐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민은 그 '일'이라는 것이, 스스로 업을 일으켜 배달 앱 없이도 열심히 경영해가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자신들보다 아래에 두고, 본인들은 '갑'의 위치에 올라서는 '무서운 일'이었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만큼 겸손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 민족'을 개발한 것이지 '배달'이라는 서비스 자체를 처음 만든 게 아니다.

한데 지금 우아한형제들의 행보는 마치 본인들이 배달 업계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걸로 보인다. 이것이 독과점의 폐해가 아니면 무엇일까.

아무리 사기업이라도 요금제 개편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하면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배달 업계는 배민만의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자영업자들의 세계였던 그 곳에 배민이 나중에 끼어든 거라고 봐야한다.

배달 앱 덕분에 장사 더 잘 되게 해줬으니 그걸로 됐다는 얘긴가. 그러니 매출 증가에 따라 돈을 받겠다는 시스템엔 문제가 없다는 건가.

스마트폰 시대에 자영업자들이 배달 앱을 이용하는 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 배민은 본인들이 의도치 않게 슈퍼 갑이 되어버렸단 사실을 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

이날 인터뷰에 응한 우아한형제들 박태희 상무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사과한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이 참 아쉬웠다. 

그는 또 인터뷰에서, 이번에 도입한 '수수료 5.8%'가 전 세계 어느 기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싼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런 멘트는 현재 배민이 처한 상황에서 전혀 도움 될 것이 없다. 수수료가 얼마나 싼지에 대해선 자영업자, 대중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비율로든 매출액에 기반해 수수료를 뗀다는 그 자체가 싫은 것 아닐까.

'배민'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위에 있는 기업에 어느 순간부터 종속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가게 매출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반감.

그렇다. 문제는 그 구조 자체다. 이것이 지금의 배달의 민족이 욕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4월 6일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두루 살피지 못했다', '3, 4월 수수료 절반을 돌려드리겠다', '수수료 서비스에 대한 보완책을 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엿새만에 고개숙인 배달의 민족 "요금제 개편 사과"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6일 논란이 되고 있는 요금 체계 변경과 관련해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요금제를 바꾼지 6일만

www.chosun.com

과연 '배달의 민족'은 '게르만족'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배민의 행보를 일단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 와중에 탐탁지 않은 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치킨이 생각나면 배달의 민족 앱을 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제도 배민으로 치킨 하나 시켜 먹었다.) 

다른 앱도 있지만 그 또한 배민과 함께 '딜리버리 히어로'가 운영하는 것이니, 선택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전화 주문을 해야하나 싶다.

우아한형제들 박태희 상무는 인터뷰 끝무렵에 이런 말을 남겼다. 

업주님들에게는 주문 증가가 많아지는 앱, 그다음에 라이더님들에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는 앱. 그리고 이용자 분들께서는 다양한 식당 메뉴를 즐겁게 선택할 수 있는 앱이 되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 우아한형제들 박태희 상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2020. 4. 7.) 인터뷰 중>

부디 자영업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배민이 여론의 공분이 아닌, 지지를 받는 기업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