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읽었다.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이다. 장강명 작가에 대해서는 즐겨 염탐(?)하는 MBC 김민식PD의 블로그에서 처음 알게 됐다.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책의 리뷰 글을 통해서였다.
책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리뷰에 요약되어있던 내용만으로도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시대를 관통하는 시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11년 간의 기자생활 경력이 있으시다고. 그렇게 장강명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얼마 전 그가 쓴 소설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호기심에 집에 든 책, 그게 바로 <산 자들>이었다.
<산 자들>은 단편 소설 10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평소에 단편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소설 자체도 웬만큼 이슈가 되는 것 아니고서는 잘 손 대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단편은 더더욱 손이 안 간다. 분량이 장편 소설에 비해 짧다 보니 아무래도 내용이 알차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뭔가 책을 읽다 만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산 자들>은 달랐다. 이야기가 흐지부지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건 단편소설이 주는 장르적 특성이라고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흐지부지가 아니라 '여운을 남긴다'며.
<산 자들>에선 그런 불만족을 상쇄할 만큼의 임팩트 있는 소재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소설이지만 완전한 픽션은 아닌 것만 같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고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다섯 번째 순서에 있던 <사람 사는 집>이었다. ‘기억에 남는다'는 표현보다는 사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사람 사는 집>은 서울 마포구 현수동(소설 속 가상의 공간적 배경)의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신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동안 살아왔던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철거민들은 주거권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작가는 그 과정을 하나 하나,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여준다. 그런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포인트는 이 이야기 자체에 있지 않았다. 그건 바로 철거민들의 이야기 중간중간, 굵은 글씨체로 등장하는 내용에 있었다.
마치 신문기사의 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듯한 문장들은 재건축 사업의 진행 상황,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 열기 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갈수록 철거민들의 상황은 악화되어 가는데, 그것과는 정반대로 사람들의 투자심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실제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재건축, 재개발로 들어선 단지가 그 전보다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침을 흘리곤 했다. ‘저기에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떼 돈 벌었겠다. 진짜 좋겠다. 돈은 저렇게 버는 거구나.’하고 말이다. 그 사업으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며 삶의 터전을 내주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솔직히, 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만으로,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이라는 소설집은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위에 언급한 철거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 맞서게 되는 직장인,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등 우리가 자칫 잊고 살기 쉬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산 자들>은 ‘각자도생’의 시대, 대한민국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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