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후기

이 영화, 잘 됐으면 좋겠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 솔직 후기

반응형
(스포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코미디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결제하는 순간까지 망설여졌어요. 영화 제목도 그렇고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그렇고, 그냥 웃다가 끝나는 정통 코미디 영화인 것만 같았거든요.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은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리한 설정과 너무 뻔한 방식으로 전개해나가고, 또 웃음을 강요하는 영화들이 있죠. 그러면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립니다. 
작품성 있는 영화라는 평이 나와도 코미디 영화는 굳이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관의 대형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이왕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보는 게 더 좋다고 느끼니까요.
코미디 영화는 굳이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나중에 컴퓨터로 봐도 재미가 반감되거나 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뭐, 일반화 해서 말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편견을 가득 안고, 한편으론 아무 정보와 기대 없이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저는 '역시나...' 하는 실망감과 함께 집중력을 조금씩 잃었습니다. 차승원의 지적장애 연기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딸 샛별(엄채영)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상황 속에 유머 코드가 많이 녹아 있었지만 큰 웃음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중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저는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철수(차승원)가 지적장애를 갖게 된 것과 아내와 사별하게 된 것, 딸 샛별(엄채영)이 백혈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 배경에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습니다.
뇌를 거치는, 어떤 생각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냥 반사적으로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구 지하철 참사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사고였습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의 일이었습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당시의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듯했습니다. "여러분...그 날의 일을 잊으신 건 아니죠?"라고요. 
부끄럽지만, 위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를 묘사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16년이나 지난 일이라는 것도, 지난 세월 동안 그날의 일을 떠올렸던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것도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거든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관람석 여기 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제 감정의 정체는, 바로 '미안함'이었습니다.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던 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의 유가족, 생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의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살고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철수(차승원), 그의 딸 샛별(엄채영)을 비롯한 영화 속 여러 등장 인물들처럼요.

그들에게 대구 지하철 참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영화화할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설립된) 안전문화재단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소방관들도 인터뷰 했다. 이 일이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게 괴롭다고 했다. 이 분들에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16년이나 지났지만 그 분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그걸 몰랐다는 사실이 죄송했다. 마음이 아팠다"
- 이계벽 감독 인터뷰 중 (뉴시스 2019. 9. 4.)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고 포털 사이트에 '대구 지하철 참사'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올해 2월 18일자로 작성된 기사들이 보였어요. 참사 16주기 추모식이 열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반성하게 됐어요. 그 기사들을, 봤던 기억이 전혀 없었거든요. 수많은 연예계 가십 기사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 보면서 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사건 관련 기사는 볼 수 없었던 건지, 아니 보지 않았던 건지.

저에게 닿지 못한 수십 건의 신문 기사들 보다 한 편의 영화가 저의 인식을 바꿔 놓은 셈입니다. 비록 얼떨결에 우연히 본 영화였지만요.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이계벽 감독의 진심과 의도가, 적어도 저에게는 제대로 통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매번 배워가고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몰랐던 것들이 내가 사는 세상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번 작품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영화'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많은 관객들이 사랑해주길 바란다."
- 이계벽 감독 인터뷰 중 (뉴시스 2019. 9. 4.)

<힘을 내요, 미스터리>의 흥행 실적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타짜 : 원 아이드 잭>(168만 명), <나쁜 녀석들 : 더 무비>(268만 명)에 비하면 초라한 관객수(88만 명)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개봉 6일차 기준)

200만 명 정도의 관객수를 확보 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데, 부디 입소문을 타고 뒷심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평범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 거르셨던 분들.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영화니 꼭 영화관에 가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쿠키영상도 있어요!)

<힘을 내요, 미스터리> 응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