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사건을 참 많이 겪게 됩니다.
좋은 일도 있지만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게 하는 일들도 있죠.
그런 일이 아예 안 일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럴 때 ‘어떻게 훌훌 털고 일어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스토너’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고난을 이겨내는 자세에 대해 배웠어요.
주인공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이에요. 새로운 농사 기술을 익혀 집안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하죠.
스토너는 어느 날 영문학 강의에서 학문에 매력을 느낍니다. 부모님 몰래 진로를 바꿉니다. 농업이 아닌 영문학 전공자로서 학교를 졸업하고요.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영문학 공부를 이어갑니다.
교수가 된 스토너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요. 그사이 결혼도 했고요.
그런데 곧 시련이 닥쳐옵니다.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영문학 세미나에서 스토너는 ‘워커’라는 학생을 만나요. 장애가 있어 몸이 불편한 학생이었는데, 스토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과 행동들을 하곤 했습니다.
워커가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날, 스토너는 그 내용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워커가 말하는 것이 스토너 자신과 캐서린 드리스콜이라는, 세미나에 있었던 여자 강사를 매우 까는 내용이었거든요.
스토너는 워커에게 시정을 요구했고, 워커는 그런 대우를 받은 것이 부당하다며 지도교수를 통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스토너는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며 물러서지 않죠. 갈등은 스토너 대 워커의 지도교수로 확산돼요. 그리고 곧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워커가 대학원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교수들이 모여 심사를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스토너도 참석해요. 그리고 워커의 밑천이 다 드러나도록 질문을 던지며 몰아붙입니다.
그렇게 워커 지도교수와 더 큰 마찰이 일어나고, 그 지도교수는 학과장으로 승진한 이후 스토너를 좌천시켜버리죠.
워커와의 일로 시달리던 스토너는 캐서린 드리스콜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워커의 발표가 있은 후 드리스콜은 논문을 다시 썼고 그걸 봐달라고 스토너에게 요청했었거든요.
학교에서 보기로 했었는데 뒤늦게 논문을 보다가 약속한 기일을 놓쳐 (아마도 큰 그림?) 직접 집 방문을 하게 돼요.
스토너를 집안으로 들인 드리스콜은 논문 이야기를 듣다가 그간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고 스토너에게 일어난 일 또한 걱정해요.
그때 스토너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 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264쪽
스토너는 늘 덤덤하고 의연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워커와의 일로 폭풍이 몰아칠 때도, 동료 교수가 학과장이 돼서 1학년 기초 수업이나 강의하라고 자신을 끌어내렸을 때에도 격하게 반응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자기 자신이 그 일을 겪으며 얼마나 절망감을 느꼈는지를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비로소 깨달아요. 동시에 그 짐을 내려놓게 되죠.
사회 생활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이겁니다. “힘들면 혼자 끙끙 앓지말고 꼭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해. 안 그럼 병난다.”
그래도 저는 꾹꾹 참아가며 사는 편이었어요. 본래 기질이 그런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딱히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버텨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지긴 했으니까요.
그런데 ‘스토너’의 저 대목을 보니까 ‘말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나도 앞으로는 마음속으로만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제 입밖으로 꺼내 말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일을 겪더라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라고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때, ‘아, 내가 그동안 힘들긴 했구나’, ‘하지만 그까짓 거 별 일 아니지’ 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말을 해야 안다. 주변 사람도, 나도. 말하지 않으면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진정 느끼지 못한다. 이 점 꼭 기억하시면서 인생을 살아가시면 시련이 닥쳐와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읽고 인상 깊은 한 구절과 저의 생각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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