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벼운 일상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아내의 친구가 아이와 함께 저희 집에 놀러왔던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에 부모님과 함께 사시는데 텃밭에서 직접 키운 거라며 상추를 잔뜩 가지고 오셨어요.
덕분에 그날 저녁에 고기를 사다가 상추와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약 하나도 안 치고 키우신 거란 말을 들어서 그런 지 더 신선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로부터 2주 뒤, 가족끼리 오랜만에 또 고기 한번 구워먹으려고 그때 먹고 남은 상추를 냉장고에서 꺼냈는데요.
싱크대에서 상추를 씻는데 상추 뒷면에 소라 껍데기? 같은 게 붙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친환경이라더니 별 게 다 붙어있네. 이게 뭐지?' 정도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으~! 이거 뭐야!"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뭔가 꿈틀 댄다며 빨리 와보라고 하더군요.
지네나 애벌레 같은 게 나왔나? 싶어서 조심조심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쬐끔 오래 된 아파트라, 가끔 개미나 거미, 또 바퀴벌레도 출몰하거든요.
그런데 싱크대에는 정말 의외의 생명체가 있었어요. 바로 달팽이였습니다.
그제야 아까 제가 상추를 씼을 때 봤던 게 생각이 났어요. 제가 '소라 껍데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건 등껍데기에 몸을 숨긴 달팽이었던 겁니다.
달팽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꿈틀꿈틀대며 살 길을 찾아가는 달팽이는 보니까 귀엽기도 하고, 저도 괜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달팽이를 싱크대에서 구출해준 뒤 안전한 상추 위에 올려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게 달팽이야~"하고 한참을 구경 시켜줬어요.
그렇게 살아있는 달팽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내의 친구가 다녀간 게 벌써 2주가 다 되었는데, 그럼 냉장고에서 2주 동안 있었다는 얘긴데 달팽이가 그 안에서 살 수가 있나? 하고 말이죠.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급히 검색을 좀 해보니, 달팽이에게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온도는 20~30도가 적절한 수준이라고 해요.
그럼 온도가 0도에 가까운 냉장고 내부는 생존하기 부적합한 환경이라는 얘긴데, 어떻게 된 걸까요.
확실하진 않지만 겨울인 줄 알고 동면에 들었거나, 동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버텼던 걸로 보입니다.
달팽이도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든다고 해요. 겨울은 아닌데 서식 환경의 온도와 습도가 맞지 않으면 껍데기 속에서 흰색 막을 치고 잠을 잔다는데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또 냉장고 야채칸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달팽이가 기특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주 잠깐 키워볼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나갈 때 아파트 화단에 잘 놓아주기로 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어요.
첫째가 자기가 키우겠다며 살짝 떼를 쓰며 아쉬워하긴 했는데, 집으로 돌려 보내줘야 한다며 만류했습니다ㅎㅎ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달팽이 정도는 키워봐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달팽이는 별 거부감이 없어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ㅎㅎ
요즘 비가 와서 달팽이가 살기 좋은 환경일 것 같은데, 화단에서 잘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네요~ㅎㅎ
오늘의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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