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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의 기록/영화

김재규를 다시보게 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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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봤습니다. 개봉 당시에 굉장히 보고 싶었던 영환데 영화관에 갈 시간이 잘 나지 않았고, 여유가 좀 생겼을 때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러다 며칠 전에 예기치 않게 자유시간이 생겨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유부남의 자유시간엔....역시 영화 감상이 제격입니다. ㅎㅎ

영화가 끌렸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라는 점.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선호합니다. 실제 사건을 각색한 영화는 몰입도 잘 되고, 또 보고 난 뒤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 영화를 통해 뭔가 하나는 더 배우게 돼서 좋아요.

 

둘째, 배우들의 라인업. 이병헌, 이성민 두 배우가 동시에 등장하는 영화라는 걸 봤을 때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병헌 배우야 뭐, 어떤 배역이든 완벽하게 소화하기로 워낙 유명하죠. 

 

제가 봤던 이병헌 배우 출연작 중 '노잼'이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이죠.

 

이성민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봤던 것 중에는 <공작>이 좋았어요. 제 주변 지인들 사이에선 이 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좀 갈렸는데, 저는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공작>은 개봉 당시 액션 씬 없이도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 화제가 됐었는데요. 그 중심에 이성민 배우가 있었던 겁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영화를 힘있게 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가지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믿고 봐도 될 것 같아서 감독이 누구인지조차 찾아보지 않고 그냥 보기 시작헀는데요.

 

그런데 보다 보니 어째 전체적인 느낌이 익숙합니다. 그렇다고 어딘가 부족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장면 연출이 너무 고급져 보였어요. 감독이 누구인지 찾아보고서는 "그럼 그렇지!"를 외쳤답니다. 

 

<남산의 부장들>의 감독, 바로 영화 <내부자들>을 만든 우민호 감독이었어요.

 

<내부자들>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감독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나서부터 <남산의 부장들>을 보는 제 눈이 좀 더 반짝이게 됐던 것 같아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직전의 상황들을 그린 영화입니다. '10.26'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하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만큼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건데요.

 

하지만 저처럼 이 시기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매우 단편적으로 접하게 될 뿐이죠. 18년 간 독재를 하던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 당했다..정도로요.

 

전후 맥락을 배웠다 하더라도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그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만큼 이병헌, 이성민 두 배우의 내면 연기가 압권이에요. 장기 집권을 하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만, 동시에 심적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박 대통령의 심리를 이성민 배우가 잘 소화해 냈고요. 혁명 초기의 마음을 잊고 괴물이 되어가는 대통령을 보며 갈등하는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 배우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영화 속 두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저 당시 두 사람의 심리 상태는 저런 거였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게 돼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 김 부장(이병헌)이 박통(이성민)을 암살하고 궁정을 나서는 씬이었어요. 순식간에 계획된 일을 완수한 뒤 김 부장이 이렇게 몇 번씩이나 되뇌입니다.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이 장면에서, 글쎄 뭐랄까요. 여러 감정이 뒤섞인 김 부장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그간의 분노를 표출해 털어낸 반면, 동시에 '아 몰라, 이제 엎질러진 물이야.' 하는 듯도 보였습니다.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었건 어쨌든 <남산의 부장들>은 김 부장이 박통을 암살한 주요 동기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였다는 것으로 그려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죠. 대통령이 경호실장만을 편애해 온 사실에 앙심을 품어 암살한 것이라는 설이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우발적'으로요.

 

이렇듯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동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재규의 속마음이 실제로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10.26에 이어 벌어진 역사는, 10.26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었으니까요. 

 

어떤 동기에서든, 온갖 부작용을 낳았던 18년 간의 군부 독재를 비로소 끝낼 수 있었는데, 또다시 군인이 나서서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사회를 억압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얼마나 허무하고 비극적인 일인가요.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사건이 이토록 비극적이었다'라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 끝무렵 '김재규의 최후 진술'에 이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육성'을 삽입한 것을 보고 더욱 그런 의도를 느꼈어요. 김재규는 다른 의도는 없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하는데, 전두환은 김재규가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일을 벌였다고 공식 발표를 해버립니다. 

 

김재규의 진정성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남산의 부장들>은 주장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10.26 사건과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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