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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여신’을 읽고 | 감동 소설, 일본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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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녹나무의 여신’을 읽었습니다.

‘녹나무의 여신’은 2024년 5월에 우리나라에 나왔는데, 2020년에 출간된 ‘녹나무의 파수꾼’의 후속작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작가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감동 코드의 마음 따뜻해지는 소설도 잘 씁니다.

저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소설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런 면모를 알게 됐고, 인생이 재미 없다 느껴질 때면 그의 감동 소설을 찾아 읽곤 했어요.

‘녹나무의 여신’은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앞선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녹나무의 여신부터 접했을 독자나 전작을 오래 전에 읽었을 사람들을 위해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중간중간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장을 써두었습니다. 그래서 녹나무의 여신만 읽어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작을 읽고 보는 것보단 재미가 덜 할 겁니다.

* 녹나무의 여신 줄거리


아무튼,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레이토가 파수꾼으로 일하고 있는 녹나무에 어느 날 유키나라는 여고생이 다가옵니다. 시집을 보여주며 여기서 팔아달라고 해요. 거기엔 녹나무에 관한 시가 쓰여 있었고 레이토는 곤란해 하지만 그러겠다고 합니다.

(중간에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좀 건너 뛰고) 한편, 레이토에게는 치후네라는 이모가 있어요. 녹나무를 지켜온 가문의 후손이자 레이토 어머니의 배다른 언니이죠. 이 이야기는 녹나무의 파수꾼에 나옵니다.

치후네는 나이가 들어 가며 인지기능장애를 앓게 돼요. 꿋꿋이 버텨내기 위해 습관적으로 메모하고, 인지증 환자들의 모임에도 참석합니다. 하루는 그 모임에 레이토가 동행하는데요. 레이토는 거기서 모토야라는 중학생 남자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중학생 남자 아이가 왜 와 있을까? 했는데 뇌질환으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단기 기억 상실. 모토야는 자고 일어나면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토야 자신도 하루 단위로 기억을 잊는다는 걸 알기에 자기 전 일기를 씁니다. 레이토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죠.

다음날 일어나 일기의 내용이 긍정적이었던 걸 본 모토야는 다시 레이토를 만나러 가요. 녹나무가 있는 곳으로.

거기에 비치되어 있던 시집을 통해 모토야와 유키나의 연이 이어집니다.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었던 모토야는 유키나의 시를 보고 삽화 그리듯 그림을 그려요.

후에 그 그림을 본 유키나는 시의 내용 그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고요. 레이토는 그 둘을 만나게 해 그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끔 돕습니다. 유키나와 모토야는 결국 녹나무에 관한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 내요.

* 감동 포인트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드렸지만, 물론 여기에는 얽히고 설킨 더 자세한 사연이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구요. 제가 감동 받은 포인트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저는 여러 등장인물 중 모토야라는 인물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해보게 됐어요. 하루가 지나면 모든 기억을 잃는 단기 기억 상실증으로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레이토, 그리고 유키나를 만나며 삶의 활력을 되찾아요.

유키나가 쓴 녹나무 이야기를 보고 모토야가 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던 거죠. 물론 그러한 감정의 유효기간 또한 ‘단 하루’였지만 모토야는 그것을 일기에 잘 기록해둡니다. ‘내일의 나에게’라는 제목으로요.

하루는 모토야가 이런 글로 일기를 마칩니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내가 부럽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포스트잇을 꺼내 그 자리에 붙이고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매일 잠들기 전, 내일의 나, 미래의 나를 부러워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내일의 나’를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모토야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내일이면 이런 거 해야지! 그럼 진짜 기분 좋을 거야’ 이런 감정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아요. 기대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간절히 갖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어떤 게 행복한 삶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모토야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모토야가 내일이 기대된다고 했던 것은 잠들기 전 오늘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모토야가 되었을 때, ‘어제’의 행복이 없었다면 바로 오늘, 모토야가 바라고 걸어갈 행복의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내일의 모토야가 의지할 것은 어제의 모토야가 쓴 일기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모토야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어딘가에서 많이 듣던 말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한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메시지를 ‘모토야’라는 인물의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크게 보면 수십 년의 세월이 이어져 있는, 하나의 큰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이 삶의 끝에, 무언가 큰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온갖 걱정과 불행이 해결될 날이 오겠지’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생각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잊게 만듭니다.

모토야의 인생도 계속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억을 잃기에 극단적으로 분절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비극적이지만 모토야는 그 누구보다도 ‘오늘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이렇게 ‘연속적이면서도 분절되어 있는’ 인생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 실천


자, 이제 책에서 얻은 교훈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남았습니다. 소년과 같은 마음으로 ‘내일 뭐하지?’ 하고 기대할 수 있는 일을 적어도 하나씩이라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최근에 삶을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주어진 일만 반복해서 할 뿐이었고, 가정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수동적이 되고 점점 어딘가에 끌려다니는 인생이 됐던 것 같습니다. 주도적으로, 내가 재미있고 행복해할 일을 찾으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인생에 기대되는 것이 없고 지루했던 것입니다.

적극성과 주도성. 그리고 사회성. 이것을 되찾아 하루하루 살아가야겠습니다.

너무 먼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조금 가까운 미래를 기대하며 오늘 하루 내가 좋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의 방식을 체득해야겠습니다.

그런 자세를 어느 순간 또 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내일의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일의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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