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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의 기록/제품 & 서비스

아이패드 에어3 구매 후기 : 애플의 전략을 보는 음모론적 시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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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간 나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패드 병'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병'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애플 제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꽤 유명한 질환이다.

여기엔 여러 증상이 동반 되는데, 내가 구매를 하기까지 겪은 건 대략 다음과 같았다.

'아이패드 병'을 경험하다

1. 하루 종일 아이패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일이든 육아든 그간 해왔던 취미 생활이든, 모든 것에 집중력을 잃게 된다. 상사병에 걸리면 이런 상태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있을 정도다.

2. 아이패드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 헤맨다. 블로그, 카페 등에 올라온 후기 글들, 유튜브의 언박싱 영상 등 웬만한 건 다 본 것 같다. 여기엔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3. 아이패드 중에서도 어떤 모델을 살지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이어진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네 가지 라인으로 출시하고 있다. 아이패드,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 에어, 아이패드 프로까지.

태블릿이라는 본질은 같지만 스펙상에 차별점을 둬서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그놈이 그놈인 듯하지만 돈을 좀 더 보태 훨씬 좋은 성능의 제품을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가장 비싼 제품에도 눈독을 들인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태블릿에 100만원 이상을 지출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고성능 아이패드가 과연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가장 비싼 프로 라인을 빼더라도 세 가지 제품군이 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와 유튜브를 전전하며 제품간 비교 콘텐츠들을 다시 살펴 본다.

이미 전 단계에서 다 봤던 것들인데더 또 보게 된다. 그러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블로거, 유튜버들은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결국 제품을 직접 내 눈으로 봐야겠다며 매장을 찾아간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일렉트로 마트니 프리스비니 하는 곳에 가는 거다. 진열된 아이패드 제품들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게 나에게 적합한지, 유튜버들이 말한 제품별 차이가 실제로도 크게 느껴지는지  살펴본다.

사실 큰 차이는 없으며, 유튜버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얘기를 부풀린 면이 있음을 느낀다. 최저 사양의 아이패드라도 실제 만져보면 부족한 점을 찾기가 힘들다.

5. 우여곡절 끝에 어떤 제품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어떤 색상을 골라야할지 정해야 한다. 스페이스그레이, 실버, 골드.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서 이 또한 결정이 어렵다. 언박싱 콘텐츠들을 또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제품을 직접 다시 보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간다. 이쯤 되면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 과정은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는다.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 '아이패드 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는 것밖에 없다고들 얘기하는 것이다.

나 역시 우여곡절 끝에 아이패드 에어3를 선택, 구매했고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평화'보다는 '공허함', '허무함'이 느껴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막상 구매 후 제품을 받아 보면, 좋긴 하지만 이 선택이 이리도 오래 걸릴 것이었는지,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별 것 아닌 데 힘을 쏟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나는 괜히, 애플과 그 제품과 관련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블로거, 유튜버들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애플의 전략을 보는 음모론적 시각 하나

1. 왜 애플은 아이패드의 종류를 네 가지나 만들었을까. 두 가지 정도만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2. 한 회사에 비슷한 여러 가지 제품이 있다 보니 요즘같은 유튜브 시대에 딱이다.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제품별 비교 콘텐츠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란 것이다.

3. 그럼 혹시, 애플은 이런 미디어 환경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다양한 제품으로 충족시키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크리에이터들이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재를 던져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4. 이게 다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팀쿡의 큰 그림 아닐까. 실제로 지금과 같이 애플 제품군이 다양해진 건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팀쿡이 애플 CEO가 되고 난 뒤 나타난 현상이다. 

 

"Nobody wants a stylus." said Steve Jobs.

 

5. 애플은 애플만의 '갬성'이란 게 있어 견고한 소비층이 있긴 하지만, 그걸 더욱 확실히 잡기 위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 아닐까.

수많은 블로그 포스팅과 유튜브 영상들이 애플이 제작한 광고보다 소비자들이 더 많이 접하는, 또다른 광고가 되는 시대다. 이것은 기존의 광고들 보다 소비자들을 더 현혹하고 제품 구매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만약 나의 이런 공상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애플과 같은 전략을 펼쳐도 좋을 것 같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 같은 제품 내에 다양한 라인을 만들어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아, 물론 모든 제품을 쓸모 있게, 또 완벽하게 만들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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