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저도 김호연 작가를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을 통해 알게 됐어요.
당시에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후속으로 나온 '불편한 편의점2', 최근에 나온 '나의 돈키호테'도 직접 사서 봤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이 작가의 초기작은 어땠을까? 어떤 작품으로 데뷔했을까?'
김호연 작가의 데뷔작은 뭐였는지 봤더니 '망원동 브라더스'라고 나오더군요. 일단 망원동이라는 지명이 친숙하게 느껴져서 호기심이 생겼어요.
찾아보니 책 표지 일러스트도 재미있게 (골 때리게ㅋㅋ) 그려져 있어서 기대감이 한층 커졌습니다. 그렇게 구매를 했고 지난 설 연휴 동안 다 읽었어요.
(*여기서부터 스포 주의!)
무엇보다 해피엔딩이어서 좋았습니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네 남자를 가리켜요. 무명 만화가로 학습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는 '오영준', 40대 기러기 아빠 '김 부장', 50대 만화 스토리 작가 '싸부', 그리고 20대 후배이자 고시생인 '삼척동자'.
어쩌다 보니 넷이 영준의 옥탑방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게 되는데, 저마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져요.
읽고 있으면 그들이 마주한 가혹한 현실 앞에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지만, 한편으론 또 웃음이 납니다.
망원동 옥탑방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서로를 격려하고, 때로는 투탁거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돼요.
소설 속에 펼쳐진 네 사람의 운명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만화가로서 뚜렷한 작품도 내지 못하고, 연애도 실패하고, 주변에 답 없는 남자들만 드글드글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영준은 새로 살 곳을 알아보러 다녀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삶에 활력을 되찾습니다.
김 부장은 비록 가족을 캐나다에 두고 한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지만, 술 먹은 다음날 끓여먹곤 하던 콩나물 해장국으로 식당을 하게 되면서 차츰 성장해나가죠.
'싸부'는 이혼이라는 위기를 직면하지만, 영준이 살던 옥탑 옆집 화재 사건에서 영웅과 같은 면모를 발휘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이었던 삼척동자. 비록 고시 패스에는 실패하지만 김 부장과 해장국집 일을 같이 해나가며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한층 밝아집니다.
하지만 네 사람의 운명이 조금씩 잘 풀려간 것이 우연이라고 볼 순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행동’을 했기 때문에, 뭐라도 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입니다.
영준은 포기하지 않고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학습만화를 근근이 그려가며 생계를 유지하려 애썼고,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옥탑을 벗어나려 움직였습니다.
김 부장은 메뉴를 출시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해장국을 끓였고, 싸부는 옆집에 불이 났을 때 물을 적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불길로 뛰어들었습니다. 삼척동자는 고시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김 부장을 도와 일했어요.
그러고 보면 ‘인생사 새옹지마’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가 부자이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면 성인이 되고 자기 꿈을 꾸며 살기엔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그래, 루저의 푸념이다. 하지만 루저가 너무 많다. 나도, 옆의 김 부장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석의 아버지도 모두 루저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105쪽)
망원동 브라더스 중간 쯤에 나오는 ‘영준’ 의 말입니다. 아마도 김호연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죠. 뭘 하든 이기고 싶지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진다’는 것은 어쨌든 링 위에 올라가긴 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글러브를 끼고 상대와 마주하지 않으면 질 일도 없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지 않습니다.
지지 않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늘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요.
인간은 성장을 추구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죠. ‘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수 과정입니다. 누구나 지면서 사는 것입니다.
지면서 살면 너무나 힘듭니다. 하지만 눈 앞의 패배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끄러워할 것도 없어요. 오늘 졌다는 건, 어쨌든 링 위에 올라 치열하게 한 판 싸웠음을 뜻하는 것이니까요.
오늘 하루 수고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여주면 될 일입니다. 가족, 혹은 가까이 지내는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며 훌훌 털어버리는 것도 좋겠지요.
그래도 위로가 안 된다면 오늘 소개해드린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를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영준과 김 부장, 싸부, 삼척동자, 네 남자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도 ‘행동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망원동 브라더스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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