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메리 작가의 책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를 읽었습니다. 2019년 초에 출간된 책이고 2020년에 4쇄를 찍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책입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서메리 작가님을 브런치에서 알게 됐던 것 같아요. 브런치에는 '퇴사'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서메리 작가님의 글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콘텐츠였습니다. 내용도 좋았지만 글과 함께 있는 귀여운 그림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듯 합니다.
작가님의 글이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언젠간 꼭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메모를 해두었어요. 1년 365일, 사시사철 퇴사 욕구로 충만한 저에게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의 책이었던 거죠ㅎㅎ
막상 책을 펼치자니 좀 고민이 됐어요. 왜냐하면 제가 한창 소설 책 읽기에 재미를 붙여가던 상황이었거든요. 소설 책을 읽는 게 우울증을 이겨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이기도 했고요.
또 다른 재미있는 소설 책을 찾아 읽고 싶은데, 읽으려고 예전에 사둔 이 책이 눈에 밟히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 읽다가 안 읽히면 덮고 소설로 넘어가자고 마음 먹고서야 겨우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길 수 있었습니다.
와... 그런데 읽다 보니까 웬만한 소설 책 보다 더 집중하게 되더군요. 작가가 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서로 홀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글인데, 사실 '에세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서메리'인 소설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만큼 저자의 경험담들이 흥미진진하게 느껴졌고, 그걸 차근차근 풀어내는 표현들도 좋아서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제 심리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프리랜서를 꿈꿨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 꿈을 완전 포기한 건 아닙니다 ㅎㅎ)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꿈꾸는 것일 뿐', 그 꿈이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막연하기만 했어요.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굳게 퇴사 결심을 하더라도 프리랜서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만나게 된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는 그런 저에게 그 무엇보다 프리랜서의 삶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1. 어쩌면 프리랜서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환경을 원하지 않을까? 절반의 불안한 자유와 절반의 안정된 구속이 양립하는 그런 비현실적 환경을. 만약 쭉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 회사에 남아 있기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148쪽)
2. 일감이 충분할 때는 누구보다 큰 자유와 보람을 느끼지만, 일이 없어지면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기분으로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 것이 프리랜서의 아이러니한 팔자다. 버티는 놈이 살아남고 기다리면 언젠가 일감이 들어오는 것이 프리랜서라지만, 솔직히 간이 웬만큼 큰 게 아니고서야 그 '언젠가'를 마냥 속 편히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간이 크기는커녕 산들바람에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심약한 정신력을 지닌 나는, 정말 한 달 내내 울리지 않는 휴대폰과 텅 빈 메일함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며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다. (175쪽)
3. 프리랜서는 혼자서 최소한 네 사람 몫을 해 내야 하고, 그 일들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의 일이 직장인보다 네 배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직장인과 프리랜서를 모두 경험해 본 장본인으로서 얘기하자면,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힘들거나 덜 힘들다고 단정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극히 무의미한 짓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프리랜서의 일과에 일반적인 직장인보다 더 큰 자유와 책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적 특징이 프리랜서의 삶에 직장인과는 또 다른 명암을 안겨준다. (206~207쪽)
이 책을 읽고 나서 프리랜서에 대해 평소에 제가 해왔던 생각들 대부분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프리랜서가 되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을거야'라는 식으로 쉽게 넘겨 짚었던 것들은 직장 생활이라는 현실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에 생긴 막연한 동경이었음을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독립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고, 회사를 나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니까요.
나는 외부에서, 특히 직장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프리랜서의 삶에도 어느 정도 동화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이 마법과 모험이 넘쳐나는 신비의 세계에 정신을 빼앗기듯, 직장인들은 자유와 가능성이 가득한 프리랜서의 세상에 로망을 느낀다.
그 로망에 홀려 기술도 없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직장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자유와 행복만큼이나 다양한 불안과 고충이 존재한다. 회의적인 내 친구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동화의 뒷 이야기처럼.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화 속 커플들이 매일 불같은 로맨스를 이어 가진 못했겠지만, 나는 그들 중 상당수가 가끔 지지고 볶으면서도 소소하고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해 나갔으리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혼자라서 외롭고 을이라서 서러울 때도 분명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일에 애정을 느끼며 나름대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202~203쪽)
저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들지 않고 주어진 일을 소화해 내며 그냥저냥 살고 있어요.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특히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느낍니다. 저처럼 가정을 꾸리고 계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포기했다는 건 아닙니다. 저의 블로그 제목이 여전히 '주도적 삶을 향한 월급쟁이 성장기'로 되어 있는 것만 봐도 아시겠죠?ㅎㅎ 저는 독립하기 위해 차근차근 나아갈 것입니다.
소위 '사회생활'에 자신이 없는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기회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랜서를 꿈꾸면서도 영업에 자신이 없다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거의 호소에 가까운 조언을 한다.
제발 지금 생각한 것들을 인터넷에 올려 보라고. 망해도 좋고, 인기가 없어도 좋으니 딱 한번만 해 보라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226~227쪽)
꼭 저에게 하는 조언 같아서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었습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저자가 '기회의 천국'이라고 표현한 세상에 살고 있는 만큼 인터넷에 끊임없이 저의 생각을 올리면서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복직과 함께 뜨뜻미지근해져 가고 있던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다시 불씨를 당겨봐야겠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훗날 저에게 '기회'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거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도 지나치게 당황하거나 지레 포기할 필요 없다. 책임감과 인내심을 갖고 버틴다면, 시간은 그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어 줄 것이다. (283쪽)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 모든 프리랜서 지망생들 화이팅입니다! :)
[그밖에 주목한 문장들]
1.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 경험(웹툰 연재)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자산은 프리랜서의 도전 범위가 무한히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의 나는 '일단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블로그 운영을 포함한 모든 노력의 초점을 그쪽으로 맞추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인 시절을 쭉 거치며 몸에 밴,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리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2.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들어온 웹툰 일감에 어설프게나마 도전하는 동안, '프리랜서는 내키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유튜버가 TV에 출연하고, 작가가 콘서트를 여는 시대인데 나는 어째서 한 우물에만 목을 매고 있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번역가 지망생'에서 '프리랜서 지망생'으로 넓히고 점점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132~133쪽)
3.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든 프리랜서 바닥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다음 일을 따내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한번 맛본 프리랜서의 삶은 회사 밖에서 먹고사는 인생이 더 행복하리라는 내 오랜 짐작에 확실한 쐐기를 박아 주었다.
좋아하는 소고기를 마음껏 못 먹더라도,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가방을 못 사더라도, 나는 타이트한 정장 대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북적이는 전철역이 아닌 한적한 동네 카페로 향하는 일상이 못 견디게 좋았다. (171쪽)
4. 알게 모르게 얻은 지식과 경험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1인 출판'이라는 키워드가 입력된 순간 '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아주 작은 자신감으로 출력된 것이다. 그야말로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178쪽)
5. 나는 효율에 목숨을 거는 삶보다는 이렇게 빈틈 있는 생활이 좋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글자만 꽉꽉 눌러 담은 100페이지짜리 책보다는 넉넉한 여백과 다채로운 삽화로 숨통을 틔어 주는 150페이지짜리 책이 더 읽기 편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나는 같은 양의 일을 하더라도 중간 중간 나만의 여백과 삽화를 넣어 가며 내 속도대로 일상을 즐기고 싶다. 조금 늦게 시작하면 어떻고, 또 조금 늦게 끝나면 어떤가. (238쪽)
6. 책임감 있게 하루의 페이지를 채워 나가면서도 자신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만약 이런 것이 삶의 여백이라면 프리랜서는 이러한 권리를 누릴 만한, 그리고 실제로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239쪽)
7. 만약 당신이 어느 정도는 회사 체질이면서도 동시에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이라면, 특히 그중에서도 개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의 고충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다행히도 당신에게 프리랜서라는 제 3의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255쪽)
8. 세상에는 책임감과 인내심을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지어 나는 업계에서 수십 년 이상 잔뼈가 굵은 분들이 이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프리랜서가 '매우 드물다'거나 '거의 없다'고 평하는 이야기마저 들었다.
다시 말해서,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자질들은 전쟁 같은 프리랜서 세상에서 당신을 돋보이게 해 주고, 콧대 높은 클라이언트가 앞다퉈 당신을 찾게 만들 것이라는 말이다.
책임감과 인내심이란 자질은 부와 명예는 몰라도, 최소한 생계 걱정을 하지는 않도록 도와줄 마법의 열쇠다. (262쪽)
9. 혹시 자신에게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책임감과 인내심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몸담고 있는 장소에서 스스로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면 된다.
당신은 회사, 학교, 혹은 가정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가? 늘 정해진 기한을 지키는가? 불편한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하는 편인가?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네'라는 답이 나온다면, 당신에게는 프리랜서에 도전할 자질이 충분하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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