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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인간의 쾌락탐지기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자청의 추천 책 '클루지' 리뷰 | 클루지 뜻 의미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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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로 유명한 자청의 추천 책, '클루지'를 읽었습니다.

 

글쓴이인 개리 마커스는 인지과학 석사, 뇌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인데요. 그는 '클루지'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했습니다. 

클루지란?

 

제가 이해한 클루지는 이런 개념이었습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긴 한데 완벽하지 않은 것, 어설픈 것. 

 

그래서 그로 인해 뭔가가 해결된 것 같으나 알고 보면 불완전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것. 

 

책에 있는 설명을 빌려 좀 더 보충해볼까요?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저인) 해결책을 뜻한다. (중략) '클루지kluge'라는 단어의 기원과 철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에 'd'를 삽입해 '클러지kludge'로 쓰기도 한다. 이것은 이 단어가 뜻하는 해결책만큼이나 서툴러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잘못된 발음을 유도하는 단점이 있다.

 

(중략) 몇몇 사람들은 이 단어가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옛 단어 '클루지cludgie'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영리한'을 뜻하는 독일어 '클루그klug'가 기원이라고 믿는다."  (19쪽-21쪽)

 

자연은 왜 클루지를 만들까? 진화의 과정은 영리하지 않았고, 구두쇠처럼 인색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돈과 상관이 없으며 선견지명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 게다가 진화는 10억 년에 걸친 일인데 도대체 무슨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생명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무수한 클루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형편없는 해결책이다. 만약 네 개의 기둥이 균등하게 교차,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몸무게를 분산해 지탱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기둥으로 전체 몸무게를 지탱하는 척추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직립 보행 덕분에 우리는 똑바로 선 채로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결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해결책이 우리 몸에 들러붙은 까닭은 무엇일까? 척추가 두 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네발짐승의 척추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즉 불완전하게나마 일어서는 것이 아예 일어서지 않는 것보다 (우리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생물에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23-24쪽)

 

우리 신체 구조를 예로 들어 설명하니 클루지라는 개념이 확실히 이해가 됐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변화이고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생각해 보면 최적의 선택은 아닌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체 구조를 바꿀 수 없죠. 그보다 정신적인 면에서의 '클루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좋은 판단을 내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건 다섯 번째 챕터였습니다. '위험한 행복'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어 다른 부분보다 먼저 읽었는데요. 

 

거기에 보면 인간의 쾌락 중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은 쾌락이란 걸 느끼기 때문에 그걸 자꾸 원해서, 어떤 행동에 동기 부여를 받게 되고 결국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로이트가,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쾌락은 우리의 안내자다. 만약 이것이 없었더라면 인간 종은 널리 번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8쪽)

 

개리 마커스는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그럴까? 하고요. 

 

클루지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느끼는 쾌락이란 건 매우 허술한 데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과일의 단맛과 인공적인 사탕의 단맛을 구별하지 못하고 결국 후자를 계속 갈구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유익한 것 하나 없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목을 매며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겁니다. 

 

"우선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많은 것들 (또는 아마도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전자를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3분의 1을 텔레비전, 스포츠, 친구와 술 마시기 같은 여가 활동에 소비한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직접적인 유전적 이익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것들이다. (210쪽)

 

이 챕터에서 예로 드는 인간의 행동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에 제가 집중해서 읽게 된 부분은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요즘 제가 생전 안 하던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중이었거든요...ㅎㅎ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통제감'을 느낄 때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감을 느끼게끔 설계된 존재입니다. 그걸 계속 원하게 돼 있다는 거죠.

 

근데 우리가 즐겨 하는 게임이라는 게 인간이 언제든 '통제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을 느끼면 안 하게 되니까, 조금씩 조금씩 더 높은 수준의 통제감을 맛볼 수 있게 제작된 것이 게임이라고요.

 

하지만 이것은 '과상 자극'으로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저히 '세팅된 환경'이라고 해요. 그래서 교묘하게 인간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함에도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삶은 진화심리학자들이 '과상자극hypernormal stimulus'이라고 부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과상 자극이란 너무 '완벽'해서 보통 세계에는 없는 것을 말한다.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비율의 바비 인형, 에어브러시로 눈부시게 꾸며낸 모델의 얼굴, 자극적으로 빠르게 건너뛰는 MTV 화면들, 인공적으로 합성된 나이트클럽의 드럼소리 등등이 그러하다. 이런 자극들은 조상 전래의 세계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극단적인 흥분과 희열을 전달한다." (221쪽)

 

이 글을 읽은 후에도 게임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만큼 게임이 주는 쾌락이란 엄청난 것이었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런 내 마음은 클루지야. 게임에 의해서 내가 조종당하는 것뿐,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나아' 라는 식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우리 삶을 지배하는 '클루지'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면, 결국 우리는 이전보다 더 좋은 판단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때마다 더 좋은 결정을 하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니까요.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 리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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