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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어떤 자유를 꿈꾸시나요?" 이슬아 작가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리뷰 | 독서 후기 | 소설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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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읽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군데 군데 묵직한 문장들이 자리하고 있는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생각은 '자유란 무엇일까?'라는 거였습니다.
 
'가녀장의 시대' 속 주 무대는 '낮잠 출판사'인데, 가족 기업입니다. 딸 슬아가 사장이고 어머니와 아버지인 복희와 웅이가 함께 일하는 직원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자식이라는 위계 질서가 존재하다고 한다면, 낮잠 출판사에는 그와 정반대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죠.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의 수직적인 구조.
 
요즘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사업체를 꾸려서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올라서고, 실무는 노동자들에게 맡기며 본인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요.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많은 대중들은 그런 자유가 없다고,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가의 삶을 꿈꾸죠.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가녀장의 시대'는 그런 저에게 "사장이라고 무조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다른 자유를 꿈꾸는 걸?" 하고 말을 걸어오는 듯 했습니다.
 
자유란 무엇일까. 그걸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복희)는 불특정 다수를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자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익명으로라도 말을 아낀다. 누군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수치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나. 기록된 글이 얼마나 세상을 떠돌며 이리저리 오해될지 복희는 두렵다. (중략)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 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보고 들은 뒤 집안 사람들에게만 공유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시절이 슬아에게도 올지 모른다. 일단은 코앞에 닥친 원고를 쓴다. 불특정 다수를 상상하며 쓴다. 그런 슬아를 보며 복희는 말한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복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간다.성공 같은 건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테레비나 보러 간다. 기록하지 않는 자유와 기록되지 않는 자유 속에서, 하루하루를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보내며 그는 TV를 본다. (29-30쪽)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글을 써서 돈을 벌면서도, 그로 인해 대중에게 노출된 삶을 사는 슬아는 복희의 삶을 부러워 합니다. 반대로 복희는 슬아의 삶을 부러워 할까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한 속내는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라는 말에 그 삶의 태도가 모두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바쁘게 사느라 고생 많네~ 난 이 정도인 내 삶에 만족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즐기면서 살 거야~" 이런 말들이 녹아 있는 게 아니었을까요. 
 
비슷한 생각을 했던 부분이 중반부 쯤에서도 나왔습니다. 복희와 슬아가 별안간 팔씨름 시합을 하는 장면인데요. 지나온 세월 온갖 노동으로 다져진 복희를 글만 써온 슬아가 이겨낼 리 없습니다. 
 
특훈을 받고 다시 도전장을 내민 슬아를 굴복시키고 돌아서는 복희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는데요. 
 
복희는 다시 태평하게 부엌일을 하러 간다. 호르몬보다 더한 무엇이 복희의 전신에 흐르는 듯하다. 그런 힘을 지니고도 그는 어쩐지 가모장 같은 것을 꿈꾸지 않는다. 가부장이든 가녀장이든 아무나 했으면 좋겠다. 월급만 잘 챙겨준다면 가장이 집안에서 어떤 잘난 척을 하든 상관없다.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자신에게 있음을 복희는 안다. (142쪽)
 
월급 받으며 일하는 직원. 가모장이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가정에서 주방 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이자 엄마.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그의 삶을 시간과 자유를 빼앗긴 듯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복희에게도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언제든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그렇게 표현해낸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녀장인 슬아를 팔씨름으로 가뿐히 눕힐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세다는 것으로요. 
 

 
성공하기 위해선 본인을, 본인이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분들이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애를 써요. 
 
인플루언서 되기에 성공한다면 그로 인해 돈을 벌 수가 있겠죠. 그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면, 그땐 정말 '자유'로울까요?
 
저는 '가녀장의 시대'가 '자유'에 관한 핵심 키워드로 '타인'을 제시했다고 봤습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것이 쉽게 공개되고 쉽게 퍼져나가는 세상에서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유를 누리는 길이라고,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의 자유를 원하시나요?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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