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신 건강을 위한 책 읽기

"좋은 정치란 진실과 진심을 담아 보여주는 것"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미스터 프레지던트' | 책 리뷰 | 백만인의 서평단

반응형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좋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얼마나 나라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어수선했던가. 그 이후에 들어선 정권에서 불어오는 따스함은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 말기엔 불만이 많았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 코로나19의 창궐.

정부가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사안들이었겠지만 민심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런 식의 생각도 했다. '뭐 잘했다고 이런 책을 내나'

그럼에도 책을 펼쳐봤다. 어쩐지 '지난 정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요즘이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공연 연출, 행사 기획자인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썼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까 달라졌다. 이 책은 지난 5년간 있었던 국가 기념식, 대통령 일정에 대한 탁현민 전 비서관의 기록인데, 에피소드 하나당 4~5페이지로 쓰여 있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출퇴근 길에 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목차를 훑어보다가 호기심이 발동하는 제목이 있으면 해당 페이지로 넘어가 읽으면 된다. (여전히 책은 두껍고 무겁다 ㅎㅎ)

하루는 출근길에 읽다가 눈물을 쏟을 뻔했다. 175페이지에 보면 '소방의날 기념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중앙소방학교에 마련되어 있는 위령탑 참배로 행사를 시작했다. (중략) 참배에 함께할 참석자도 의전 서열순이 아니라, 그간 순직했던 소방과 가족과 가족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정했다. (177쪽)

이런 구성을 하게 된 이유에는 개인적인 사연도 있었다. (중략) 소방의날 기념식과 관련 보고를 드릴 때, 내 짧은 사연도 함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통령은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순직 소방관이 순직했던 상황과 그 가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세요."

(중략) 다음 날 소방의날 기념식장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예정대로 대통령과 유가족은 함께 참배를 했다. 참배가 끝나고 본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 대통령이 그 자리에 함께한 아이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네가 OO이구나, OO이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 대통령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줄까?"

대통령은 그렇게 전날 보고한 내용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며 유가족과 함께 기념식장까지 걸어오셨다. 참석자들 모두 대통령과 아이들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기념식장으로 걸어갔다. (178~179쪽)

그해 소방의날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을 제외한 여타 축사나 내빈 소개를 처음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실제 붕괴 사고에서 구조된 국민이 무대에 올라 소방관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소방관들을 위해 여러 기부 활동을 해온 배우 정우성과 한지민을 명예 소방관으로 위촉하는 순서가 있었다. (179~180쪽)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쇼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령 다 '쇼'한 거고 보여주기식으로 한 행사였다 해도, 당시 대통령과 함께 했던 유가족들은 그날의 일을 평생 기억하겠구나. 그리고 소중하게 간직하겠구나.

출근길 전철 안에서 눈물이 맺혔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난 5년 내내 '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정치적 이해에 따른 비난이었다. 그래서 '쇼한다'는 그 말이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정치는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일이다. 좋은 정치란 진실과 진심을 담아 보여주는 것이고, 나쁜 정치는 욕망과 욕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수행했던 모든 일은 정치의 범주 안에 있었다. 우리에게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치고 '쇼'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가."  - <프롤로그> 중에서

진정성 있게, 타인의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거라면 정치인들이 '쇼'를 한다 해도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쇼할 때와 쇼가 끝났을 때의 모습이 크게 어긋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 '백만인의 서평단'으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