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일기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리뷰 : "프레임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반응형

8월부터 독서 실적이 좀 저조합니다. 7월까지는 그래도 한 달에 서너 권씩 읽었는데 8월, 9월은 한 달 독서량이 1~2권 수준이었네요. 

 

핑계를 대보자면 휴가 시즌에다 얼마 안 가 자가격리를 겪게 되면서 생활 리듬이 완전 깨져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리듬이 깨졌다는 건 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원은 아닙니다. 다만 수 개월간 지켜온 루틴이 흐트러지면서 독서에 대한 저의 태도, 마음가짐까지 흐트러졌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계속 시도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영 손에 잡히지도 않고 글도 눈에 안 들어왔어요. 끝내 일주일 내내 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데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책에서 흥미가 느껴질 때까지 안 읽히는 책은 도중에 덮고, 다른 책으로 갈아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의 경우에는 이런 일을 계기로 잠시 독서와 멀어지게 되더라구요.

 

어쨌든 이 방법은 끝내 성공했는데, 제가 이번에 독서를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만들었던 책은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였습니다.

 

 

C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 김현정 앵커가 쓴 책인데요.

 

사실 내용을 살펴보면 '쓴' 책이라기 보다는, 강연 현장에서 입으로 말한 내용을 책으로 다시 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서 권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았어요. 저는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글씨 크기가 꽤 컸음에도 135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적었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금세 완독할 수 있었죠. 

 

역시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땐, 안 읽히는 책을 꾸역꾸역 읽지 말고 미련없이 떠나보낸 뒤 다른 책을 집어드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예전에 제가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얻었던 독서 팁이에요. 다 읽지 못한 책에 대한 죄책감 버리기.


서론이 길었네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머릿 속에 떠올랐던 건, 대학생 때 수강했던 '방송원론', '신문원론' 같은 과목들이었어요. 인상깊게 들었던 수업들이어서 기억이 꽤 나는데, 김현정 앵커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른 점이 있었다면, 대학생 때 들었던 수업은 비교적 '이론',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아 다소 딱딱하다고 느꼈던 데 비해 김현정 앵커의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실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언론, 그리고 언론 보도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주니까 훨씬 잘 와닿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대학생 때 좀 더 재미있게 들었더라면 시험 잘 봐서 학점도 잘 받았을 텐데....ㅋㅋ 아쉽네요. 

 

이 책이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제가 즐겨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뉴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또 그걸 제대로 청취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자세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뉴스쇼>를 통해 건강하고 보편적인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찬반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는 왜 중립인 척하느냐며 너희 의견을 말하라고 닦달하는 청취자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은 모든 청취자를 위해 다양한 시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행자인 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당장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틀렸을 수 있습니다. 100퍼센트 확실한 선과 악은 없지요.

///

저는 여러분께 제가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이 포함되지 않은 뉴스를 가능하면 '날것'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대중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프레임의 구석구석을 다 조명하고 근거를 제공하려다보니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 인터뷰로 구성될 때가 많을 뿐이지요.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중

정리하보자면, 뉴스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대중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프레임 구석구석을 조명한다, 정도가 되겠네요.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다 보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앵커 멘트 중 하나가 이겁니다. "양쪽의 입장 잘 들어보시고 잘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왜냐하면 이 말에서 '<뉴스쇼>는 앵커를 비롯한 제작진이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청취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쇼>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뉴스쇼> 애청자라면 아실 텐데요. 바로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김현정 앵커는 평론가, 각종 전문가, 취재 기자 등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굳이 힘들게 당사자를 찾아 헤매는 건, 당사자야말로 사건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그만의 특별한 울림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끌어낸 인터뷰는 곧장 다른 언론을 통해 인용 보도 되고 널리 퍼지게 되는데요. 김현정 앵커는 이러한 당사자의 인터뷰가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뀌게 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매번 사건 당사자를 섭외하기가 힘들 텐데 그들만의 비결이 뭘까, 평소에도 궁금증이 생기곤 했는데요. 이 책에 보니 힌트가 좀 나오더군요. 

결과적으로 <뉴스쇼>는 김영란 전 대법관의 섭외에 성공했습니다. 모든 언론을 통틀어 첫번째 인터뷰를 성사시킨 것이지요. 특별한 비결이 뭐였냐고요? 그런 비결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희 막내 피디가 3개월 동안 김 전 대법관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 인사를 정말 3개월 동안 전화로 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3개월째가 되자 김 전 대법관이 <뉴스쇼>에 나가겠다고 했지요. 그것도 저희 막내 피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생겼는데 마이크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3개월 동안 꾸준히 연락을 하니 어느새 신뢰가 쌓인 것이지요. 인터뷰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이왕이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3개월 만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전파를 탈 수 있었습니다.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중

그냥...끈질기게 시도하는 것.이었네요 ㅋㅋ 그와중에 제작진의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김현정 앵커의 말처럼, 당사자를 섭외하지 않고 주변 인물들 인터뷰를 하면 훨씬 쉬울 겁니다. 당사자를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뚝심 있게 원칙을 지켜온 덕분에 <뉴스쇼>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청취자들 또한 제대로된, 가치있는 뉴스를 접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구요.

 

앞으로도 쭉~ 절대 흔들리지 않는 '좋은 언론', '좋은 시사 프로그램', '좋은 라디오 방송'으로 남길 바랍니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정말... 매일 아침 활력소가 되어주는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이거든요 ㅠㅎㅎ

 

<뉴스쇼> 제작진이 이 글을 볼 리는 없겠지만, 좋은 방송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며 마무리 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ㅎㅎ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밖에 주목한 문장들]

 

1. 뉴스는 나 자신이 상대방과, 나아가 세상과 좀더 원활히 소통하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도구입니다. 

 

2. 오늘날의 뉴스를 보고 과거의 뉴스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막연하더라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뉴스가 우리에게 주는 힘입니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읽어내고 나아가 미래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3. 과거의 실수를 떠올리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게 하는 것, 뉴스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4.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연출된 사진을 찍지 않는 이상 뉴스로 보도되는 사진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진을 볼 때 우리가 이해한 '사실'이 과연 '진실'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사진은 단 한 컷, 프레임 안에 들어온 장면으로만 이야기합니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한 장면만으로 모든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입니다. 한 컷의 전후 상황과 프레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함으로써 단순한 '사실'이 아닌 종합적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뉴스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5. 뉴스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프레임을 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견을 벗어던지는 것이고, 그 선입견을 벗어던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이 기사가, 이 사진이, 이 뉴스가 보여주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이 기자가 나에게 설명한 것이 정말 전부일까? 한번 질문해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능하면 사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갈등이 있는 이슈라면 양쪽의 입장을 모두 챙겨들은 후 선입견을 배제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6. 우리는 프레임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뉴스를 보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내가 가진 선입견이 내 판단에 개입하지 않았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사자들 양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7. 여전히 코를 긁고 싶은데 볼을 긁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뉴스를 진행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8. 우선 좋은 언론부터 열심히 찾아보길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널리스트, 선입견을 배제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하는 프로그램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흠 없이 완벽한 언론이란 없겠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언론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 언론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보면 다른 편향된 매체를 통해서 볼 때보다 좀더 안전할 것입니다. 

 

9. 많은 기자와 언론이 힘 있는 자들에겐 벌떼처럼 몰려갑니다. 미디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권력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마이크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들, 약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전해야 하는 말이 있어 마이크 하나, 펜 하나가 너무도 절실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분들에게도 꼭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언론 종사자가 되려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이크와 펜이 향해야 할 곳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뉴스는 힘이 셉니다. 그 센 힘이 우리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10.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자신의 생각을 무조건 밀고 나가는 것은 소신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시야가 좁은 것일 뿐이지요. 앞서도 말했지만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도 사람입니다. 절대적인 신은 아니지요. 그러니 진행자가 자신의 생각을 과신하고 자신의 잣대로만 사안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11.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본 적 없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앵커를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드디어 좋은 고수가 되셨군요!'라고 말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