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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되어 다시 읽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후기 | 책리뷰 | 감상문

꿈꾸는 강낭콩 2025. 6. 30. 08:58

이문열 작가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6월 초 전주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났습니다. 너무 유명한 소설이기에 그 존재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야기가 끝났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에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앞부분만 조금 읽을 수 있어서 그 궁금증을 여전히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꼭 사서 뒷부분까지 읽어봐야지' 생각했고 지난 주말 다 읽었습니다.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 금세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갔던 것도 같습니다. 
 
잘 쓰여진 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습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깃거리, 그걸 쉬운 글로 풀어내는 능력, 동시에 다채롭게 만들어진 문장들, 그 속에 품은 사회적인 메시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주는.
 
이런 책이 진정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꼭 읽히고 싶은 책이었어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화자는 한병태입니다. 서울에 살던 초등학생인데 집안 사정이 있어 시골로 전학을 왔죠. 

그곳에서 반장이자 학교에서 대장노릇을 하고 있던 엄석대와 만납니다. 

엄석대는 힘도 세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새로 온 한병태 또한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하죠.

서울에서 온 한병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불합리한 엄석대의 권위와 행동들에 저항합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조차 엄석대가 만든 질서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병태는 점점 지쳐가요.

결국 엄석대의 권위에 굴복하고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굴욕적일 것 같았던 한병태의 일상은 의외로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아니, 기대 이상으로 학교 생활이 술술 풀립니다. 엄석대가 한병태를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 대우해 주기 시작한 것이죠. 
 
한병태는 언제 자기가 엄석대에게 저항했었냐는 듯 어느새 그에게 길들여져 갑니다. 

5학년이었던 그들의 세계는 6학년이 되며 새 국면을 맞이합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에 의해 기존의 질서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급이 엄석대를 중심으로 무언가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담임선생님은 '시험지 바꿔치기' 사건을 계기로 모든 걸 다 뒤집어 놓습니다.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엄석대를 강하게 처벌하고 반 아이들로 하여금 그의 잘못을 실토하게 만들어요. 5학년 때만 해도 담임선생님이 아무리 털어놓으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던 아이들이 그제야 묵혀왔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엄석대의 질서에 길들여지다 못해 도취되기까지 하는 것 같아 보였던 한병태는 그 흐름에 선뜻 동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들어서는 것을 그 속에서 고스란히 지켜보게 돼요.

새로운 반장과 학급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을 채 볼 수 없었던 엄석대는 교실을 뛰쳐나가 그날로 학교를 그만두죠.
 
학교 밖에서 보복과 복수를 꿈꾸던 엄석대는 생각보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그마저도 실패하고 맙니다. '엄석대 왕국'은 그렇게 완벽히 무너져요.


 
초등학교 5, 6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비록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성인인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회사'라는 조직을 떠올렸어요. 
 
대통령도 헌법에 위배되는 일을 하면 국민에 의해 탄핵이 되는 시대에 정말 비민주적으로, 구시대적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조직이 민영기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 피가 끓을 때에는 불합리한 결정과 대우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돌아오는 건 불이익. 다수의 직원들은 '만들어진 질서'에 점점 길들여지고 결국은 순응하게 되죠. 회사로부터 약간의 보상이나 좋은 대우를 받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조직에 뼈를 묻겠다'는 충성심이 피어오릅니다. 
 
그들만의 세계는 점점 더 공고하게 되고 그 안의 구성원들은 그게 왜곡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 안에서 살아가요. 마지막까지 그게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조차 '내가 이상한 건가?' 라며 가스라이팅을 당합니다. 
 
이문열 작가는,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가장 잘못된 것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합리한 질서에 그렇게 순응하고 가만히 있는 것 또한 비겁한 것이라고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저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어요.ㅎㅎ

어쩌면 저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아이들처럼, 엄석대보다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 그 질서를 바로잡아줄 그날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요즘 마주하고 있는 질서 속에 여러분만의 엄석대를 마주하고 계신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어보며 각자가 처한 상황과 자기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의 싹 틔우는 하루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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